수천 년 지나도 멈출 줄 모르는 중동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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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팔레스타인 영토 변천의 역사
③ 왕국의 분열 그리고 멸망

다윗·솔로몬, 통일 왕조 100년
번영의 시대 지나고 쇠락의 길

신바빌로니아의 예루살렘 함락
유대인, 망국 포로로 천대받다

“오늘날 지구상에 지옥이 있다면 그 이름은 ‘가자(GAJA)’일 것이다.” 연일 지속되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병원들까지 인명 피해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지난 11월 유엔 관계자가 토로했던 말이다. 


가자지구의 옛 이름인 ‘필리스티아’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란 지명의 어원이긴 하지만, 두 민족은 살았던 지역이 가자지구 일대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그 혈통은 다르다. 고대의 필리스티아인들은 북방인 그리스 에게해 일대에서 떠내려온 해양 민족이었고, 현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이 디아스포라로 유럽을 떠돌던 2000년 동안 동쪽에서 흘러 들어온 아랍인들이다. 엄연히 다른 두 민족은 수천 년 세월을 사이에 두고 마치 한 핏줄처럼 바톤을 주고 받으며 이스라엘 민족과 영토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유다와 유대인


아무튼 고대 이스라엘 판관시대의 마지막 판관 삼손과 왕조시대의 첫 번째 왕 사울, 두 인물 모두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그 뒤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영광과 번영의 시대로 들어선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4남의 이름인 ‘유다’는 이후엔 특정 지역 또는 왕국의 이름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과 동의어로 쓰이는 ‘유대인’은 ‘유다의 후손’이란 뜻이면서 ‘유다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란 의미다. 사울은 야곱의 열두아들 중 막내인 베냐민 지파에 속했고, 사울에 이어 2대 왕위에 오른 다윗이 4남인 유다 지파에 속한다. 유다 지파는 다윗 때부터 12지파 중 주류 위치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주도하게 된다. ‘유다의 후손’을 뜻하는 ‘유대인’이 12지파 전체를 일컫는 ‘이스라엘인’과 동격으로 통용돼 온 연유가 여기에 있다. 1000년 후에 세상에 나온 예수 그리스도 역시 유다 지파에 속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다윗왕 시대에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정복해 수도로 삼으며 강대국으로 성장했고, 뒤를 이은 솔로몬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며 정치와 종교의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사울왕부터 이어지던 통일왕조는 100여 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으니, 그 조짐은 다윗과 솔로몬 부자(父子)의 부정(不淨)한 여자 관계로부터 비롯된다. 다윗은 부하 장수를 죽음의 전장으로 보내 버리면서 그의 아내 밧세바를 가로채 아내로 삼았고, 그렇게 태어난 솔로몬은 모친 밧세바의 계략 덕에 기존의 후계자인 이복형제를 몰아내고 왕위를 이어받았다. 


집권 초기의 솔로몬은 현명했으나 후반에는 천여 명의 이방인 여인들을 후궁과 첩으로 삼을 정도로 타락했고, 방만한 재정 지출은 왕국의 살림을 바닥내게 했다. 솔로몬이 죽고 뒤를 이은 아들 여로보암은 지나친 조세 부담을 줄여달라는 여론 청원을 묵살하면서 반란을 초래했고, 그 결과로 왕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개로 쪼개진다. 

▲신아시리아 제국


한편 선조 아브라함의 고향 메소포타미아 쪽에선 인근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대왕에게 잠시 정복당했던 아시리아가 아슈르나시르팔 2세에 이르러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서아시아 일대의 패권자로서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지중해 연안 쪽으로 밀고 내려왔다. 


지리적으로 좋은 먹잇감이던 북이스라엘은 수도 사마리아가 신아시리아 제국의 사르곤 2세에 의해 함락되면서 멸망하고 만다. 북이스라엘을 구성했던 10개 지파 유대인들은 포로로 끌려가거나 강제 이주당해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침략자들 밑에서 고향 땅에 남게 된 유대인들도 아시리아 제국의 통혼(通婚) 정책에 따라 이방인들과 피가 섞일 수밖에 없었다. 훗날 이들은 순수 혈통이 아닌 ‘사마리아인’으로 불리며 유대인들에게 천대받는다.


▲신바빌로니아 제국


백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은 신아시리아에서 신바빌로니아로 넘어간다. 제국의 중심이 현 이라크 북부 모슬 주변에서 남쪽 바빌론으로 바뀐 것이다. 1000년 전 함무라비 대왕의 영광을 재연하려는 듯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느부갓네살 2세는 신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단숨에 함락시키고 남쪽으로 이집트 나일강 유역까지 세력을 뻗쳐간다. 
남유다왕국 역시 이런 대제국 남진 정복의 길목에 위치해 있었기에 온전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항전하던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결국은 멸망에 이른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히브리인들의 땅은 이렇게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짓밟히고, 그 땅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망국의 포로가 되어 제국의 수도 바빌론까지 끌려가게 된다. 북이스라엘 멸망 때 이래 두 번째 디아스포라(Diaspora)인 ‘바빌론 유수(幽囚)’ 50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로써 히브리인으로 불리던 이집트 노예 신분에서 탈출(출애굽)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한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왕국을 건국한 지 500여 년 만에 머나먼 이방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다음편에 계속…)

 

전편 보기…

① 창세기, 이스라엘의 기원-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6782 

② 출애굽과 이스라엘 왕국-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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