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패권 경쟁에 휘말리는 유다의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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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팔레스타인 영토 변천의 역사
④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지배

‘비옥한 초승달 지역’ 위 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피지배계급 유대인, 새 지배자 그리스인에게 탄압

오늘날 ‘중동(中東)’이라 하면 동쪽으로 이란고원, 서쪽으로 이집트, 남쪽으로 아라비아 반도, 북쪽으로 아나톨리아 반도(튀르키예)를 포괄하는 지역을 일컫는다.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 이집트를 제외시키면 서남아시아에 해당한다. 이들 동서남북 4개 권역의 가운데 틈바구니에는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쿠웨이트 6개 나라가 퍼즐 조각처럼 꽉 맞물려 있는데, 이들이 배치된 모양새 때문에 고대 인류사에선 이 일대를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불러왔다. 


그 안에서도 현 이라크 지역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문명의 발생지이기도 했다. 


수메르 문명부터 이후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이르는 대제국의 시대까지 5000년간 현 이라크 땅에서 이어지던 중동의 패권은 그러나 BC 6세기에 이르러 아리안족의 땅 이란고원으로 넘어간다.

▲ 바빌론에서의 귀향


현 이란 남서부의 파르스에서 일어난 페르시아가 키루스 대왕 때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인근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킨 건 기원전 539년의 일이다. 이 당시 이스라엘인들은 남유다 왕국 멸망 때 포로로 잡혀 와 50년째 바빌론에서 노예 생활 중이었다. 


소위 ‘바빌론 유수’로 불리는 이 기간 동안 바벨탑이나 공중정원 같은 토목 건축 공사에 동원되어 혹사당하고 있었는데 외적인 페르시아가 쳐들어오자 그들은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이를 고맙게 여긴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은 바빌론을 함락시킨 뒤 이스라엘인들에게 해방령과 함께 귀향령을 내려준다. 


이때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다 지파에 속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4남인 ‘유다’의 후손들이었기에 ‘유대인’이란 호칭은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대명사로 쓰이기 시작한다. 


북이스라엘의 다른 10개 지파는 아시리아인들에게 멸망한 뒤 이방인들과 피가 섞였다 해서 ‘사마리아인’으로 불리며 배척당했고, 이후 이스라엘 역사는 바빌론 유수에서 가나안 땅으로 귀향한 ‘유대인’들에 의해서 이어진다. 


기나긴 유배 생활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꿈에 그리던 예루살렘은 처참했다. 오랜 세월 방치된 채 폐허로 변해 있었다. 느헤미야라는 새 지도자가 등장해 성벽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도성을 유대인들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로 가꾸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어쨌든 유대인들은 대제국 페르시아의 보호 아래 이후 200여 년 동안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모처럼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엔 율법과 교리가 강화되며 유대교가 정착되었고,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기하는 등 유대인 순혈주의도 더욱 공고해졌다.

▲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패권


그러나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은 중동의 극히 일부일 뿐으로 정복자 페르시아의 관심은 서쪽 멀리 유럽대륙을 향하고 있었다. 소아시아라 불리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에게해를 넘어 그리스로 침공해 들어간 것이다. 다리우스 1세와 그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대를 이어가며 벌인 이 전쟁은 12년 만에 실패로 끝난다. 올림픽 마라톤의 기원이 된 마라톤 전투와 영화 ‘300’으로 많이 알려진 테르모필라이 전투 그리고 세계 4대 해전의 하나로 꼽히는 살라미스 해전 등을 거치면서 그리스는 아테네가 함락되는 등 위기는 있었으나 결국은 페르시아의 수십만 대군을 잘 막아냈다. 이후 페르시아는 다시는 서방세계를 넘보지 않는다. 


동방 외적을 물리친 그리스가 도시국가들끼리 펠로폰네소스 내전을 치르는 등 150년 세월이 흐르자 동서(東西)의 공수(攻守)는 완전히 뒤바뀐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를 평정한 뒤 예전 페르시아가 진군해왔던 길을 거슬러 동방 원정에 나선 것이다. BC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가 대패하면서 광대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는 고스란히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되었고 바야흐로 헬레니즘 시대가 열린다.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온다. 우호적 보호자였던 페르시아인들이 물러나고 새로운 지배자 그리스인들을 새 주인으로 맞아야 했다. 유대인들은 예전과는 달리 피지배자 신분으로 격하되었고, 차별과 박해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 신흥 강자 로마의 등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자 대제국은 세 동강으로 쪼개졌고, 그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통치 때에는 유대인 탄압이 극에 달한다. 


이는 유다 마카베오를 주축으로 한 유대인 대반란을 촉발시켰고 결국은 하스몬 왕조라는 유다 독립왕국까지 설립하게 만들었다.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던 이스라엘 왕국이 두 개로 쪼개져 멸망한 뒤 수백 년 만에 유대인들은 두 번째의 독립왕조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독립의 영광은 잠시, ‘로마’라는 신흥 강자가 나타나 지중해 전역의 패권을 거머쥐며 오리엔트 평정에 나섰으니 유대인들은 다시 새로운 지배자를 주인으로 맞아야 했다. BC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했고, 이는 유대인 역사에 거대한 먹구름을 몰고 온다.


(다음편에 계속…)

 

전편 보기…

① 창세기, 이스라엘의 기원-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6782 

② 출애굽과 이스라엘 왕국-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416

③ 왕국의 분열 그리고 멸망-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7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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