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달아오르면 빨리 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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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여당의 젊은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국투어에 나섰다. 광폭 행보다. 국민의 이목이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젊은이다운 기백과 해박한 지식, 출중한 언변 그리고 대중적 아우라로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나라가 들썩인다. 혜성처럼 떠오른 그의 등단이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에서 발길이 이르는 곳마다 그를 연호한다. 아이돌을 향해 오빠를 외치며 열광하는 광팬들 같은 장면이 이어져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물정에 어둡고 견문이 좁고 짧은 까닭에 모르지만 한 사람의 정치인에게 이렇게 환호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일 것이다.

나는 올해 여든셋에 이른 늙은이다. 침묵이 금이라는데 이 늘그막에 삼시 세끼 배불리 먹고 지내면 그만이지, 웬 참여냐 할 것 같아 망설이다 궁리 끝의 한마디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이 해온 선거인데, 다가올 4월 총선에 한 표를 행사해야만 할 국민의 한 사람이란 생각을 뿌리칠 수 없었다. 우리에게 한 표는 얼마나 고귀한가. 결국, 침묵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단안에 이르렀음을 실토한다.

위원장은 많은 말을 쏟아낸다. 쉬운 일이 아니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말재간이다. 물 흐르듯 거침이 없다. 말의 폭포수로 ‘현하지변(懸河之辯)’이라, 다들 놀라고 있을 것이다. 한데 핵심을 놓칠 우려가 다분하다. 잘하는 말에는 반드시 따르는 게 있다. 현란한 수사다. 이도 과유불급, 과하면 분탕칠이 되는 수도 있다. 본질을 흐려놓기 일쑤라는 얘기다. 그에 흔들리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 있다. 언론인이다. 그의 전국 순회의 키워드는 시종 ‘격차 해소’다. 지역과 문화의 격차 해소, “다양한 분야의 불합리한 격차를 줄이고, 없애는 데 힘을 모으려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인가, 달콤한 약속인가. 하지만 벌써부터 지적이 나온다. 어떤 격차를 어떻게 해소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성이 적시되지 않은 정치적 레토릭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지역에 들를 때마다 자신과의 연고를 엮어낸다. 청주에선 유치원을 다녔다, 강원도에 가선 부모님의 고향으로 아버지는 춘천고 어머니는 춘천여고를 졸업했다, 군대 생활을 했던 곳이다. 부산에 들러선 좌천됐을 때 야구장을 찾았던 곳으로 자신의 정치적 출생지라고도 했다. 급기야 충청도에 가서 절정을 쳤다. “나는 어릴 적 충청인으로 살았다. 서울에 와서도 충청인으로 살았다.” 이건 오래 그래 온 것으로 케케묵은 단골 메뉴다. 속된 말로 ‘간 데 마음, 온 데 마음’ 아닌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옛날로 역주행하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 그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삼갔으면 하는 게 있다. 실내에서 연설하다 청중 속으로 뛰어드는 역동적 퍼포먼스는 나쁘지 않아 보이나, 신 신은 채 의자 위로 올라서는 건 참 거북하다. 의자는 그렇게 올라서는 곳이 아니다. 누구는 토족으로 올라서고 누구는 닦아야 한다. 겸손해야 민심이 따른다. 귀띔하고 싶다, 빨리 달아오르면 빨리 식는다. 5월 햇살처럼 싱그러운 그가 제발 여의도의 언어, 그곳 문법에 물들지 말고 이 나라 민주화의 큰 걸음에 앞장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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