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판알 튕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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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업 전략사업본부장 겸 논설위원

“2024원이요, 4원이요, 10원이요~” 선생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숫자를 부르면, 학생들은 재빠르게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주판알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계산이 끝나면 약속이나 한 듯 주판알을 쫙 털었다. 1970~80년대 유행했던 주산학원의 수업 풍경이다.


당시 취업준비생들에게 주판은 밥줄이었다. 은행에 취직하려면 주산 실력이 필수였다. 경리직은 물론 공무원ㆍ사무직 등은 주산 급수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을 줬다. 주산을 잘하면 영재 소리를 곧잘 듣곤 했다. 주산 급수가 지금의 토익시험 점수쯤 되는 셈이다.


▲주판(珠板)은 셈을 놓는 데 쓰는 기구다. 즉 계산을 하기 위한 도구로, 손으로 막대나 줄에 끼워놓은 주판을 튕겨서 조작한다. 수판(數板), 산판(算板), 셈판이라고도 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만들어진 이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흘러들어왔다.


중국식 주판(윗알 2개, 아래알 5개)은 우리를 통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전해졌다. 한데 일본인들은 윗알 1개, 아래알 4개로 개량해 사용했고, 일제강점기에 그 주판이 거꾸로 한반도에 유입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판은 전자계산기와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유용한 계산 도구였다. 해서 오랫동안 상업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관련 종사자들은 하루 종일 주판과 씨름하기 일쑤였다. 주산은 주판을 이용해 계산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려면 주판알을 올리거나 내려 주판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흔히 이것을 주판알을 튕긴다고 하다. 여기서 파생된 관용어구가 ‘주판알 튕기기’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유리한 게 뭔지 장단점(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보는 일을 가리킨다. ‘주판알 굴리기’도 비슷한 표현이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불과 77일 남았다. 하지만 ‘게임의 룰’인 선거제도는 아직도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과 비례대표를 어떻게 뽑을지가 여전히 안갯속인 게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놓고 정치권이 주판알을 튕기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야의 선택지는 지역구 득표에 따라 비례 의원을 선발하는 병립형 회귀, 지난 총선과 같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소수정당을 일부 배려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이다. 국회 다수당으로서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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