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시(獻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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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인연은 하늘을 흐르는 구름 같은 것, 비 갠 마당의 잔디 위로 내려앉는 햇살 같은 것이다. 바람을 타고 밀려와 섬의 새까만 현무암에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는 물결 같은 것이다. 소리없이 피는 꽃이고 낙엽으로 져 흩어지는 가랑잎이다. 아침마다 다시 뜨는 해이고 하루를 가로 질러 칠흑의 밤으로 잠기는 시간의 긴 그림자다. 순환하기도 한다.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다. 가까이 살다 손흔들며 떠나간 이웃이고, 떠나더니 감감 무소식인 얼굴이고, 그리워 부르다 목마른 이름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은 소리내어 읊던 습작의 내 시이고, 내 마음을 속속들이 풀어놓은 채 지금도 흘러가는 절제되지 않은 한 편의 수필이다. 그것은 분명 존재하는 어떤 실체다. 내 것이면서 나나 당신이나 그의 전유물이 아닌, 그와 당신과 내가 공유하는 그 무엇으로, 내 안에 있으면서 내 밖에 있다는 검증된 이유이다.

나는 지난 2년 모름지기, 생각지 않은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한 편의 서사를 엮고 있었다. 고국을 떠나 오래 미국에서, 미국 국적으로 살아온 김경림 수필가 내외를 만난 것. 두 분 모두 팔순으로 어려운 시절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다. 고향인 구좌 월정에 묻히고 싶다는 남편(고근필님)의 소원 따라 제주에 와 부부가 금실지락을 이어갔다.

김 수필가를 만난 것은 ‘제주일보’에 연재하는 내 칼럼 ‘안경 너머 세상’이었다. 애독자인데 한번 만나고 싶다는 게 아닌가. 내외와 함께 만나 저녁을 함께하며 부군이 미국에서 오랫동안 한인회 회장을 해왔고, 칼럼을 쓰는 등 문필가라는 것과 부인 김경림님이 글쓰기를 좋아함에도 국어권이 아니라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얼마 후 묵직한 택배가 왔다. 무슨 책인가 했더니 김경림님이 보낸 스크랩북이었다. ‘제주일보’에 실린 내 칼럼을 오려낸 것이 아닌가. 한 권을 꽉 채워 깜짝 놀랐다. 얼마나 모국어에 목말랐으면 신문에 나온 글을 기위질했을 것인가. 기연(奇緣)이었다.

나는 김경림님의 모국어가 그리워 타는 목을 축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이 닿는 ‘한국문인’에 추천해 수필가로 등단하게 했다. 수필가가 되면서 ‘제주일보’-‘사노라면’ 필진으로 글을 발표하다 남편이 노환으로 몸져 누우면서 간병을 위해 붓을 내려놓았다. 몹시 안타까웠다. 어간, 작년 말 남편이 귀천하자 소원에 따라 선산에 장례를 치렀다. 대사를 치른 김 작가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게 아닌가. 소중한 인연이라 무심할 수 없었다. 헌시를 쪽자에 표구해 보내기로 했다.

‘신문을 오리던’

-김경림 작가께 띄우는 시

신문 칼럼을/ 오리던 김경림 작가의 손은/ 공작의 손이 아니라/ 미국인으로 살아 모국어를 향한/ 타는 그리움이었다// 김 작가의 손매로 채운 스크랩북이/ 「여든두 번째 계단에 서다」에/ 들돌의 무게로 앉아 있다// 짧은 시간에/ 한국문단에 데뷔했고/ 남편 귀천을 기도로 지킨 서사 뒤/ 유채꽃 만개한 3월에 돌아가신다/ 몇 톨 추억 남겨놓고/ 미국으로 가신다// 님이시여!/ 소중한 제주의 인연 속에/ 천수를 누리소서 (東甫 김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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