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팔순 노인의 4·3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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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시인·4·3조사연구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들도 다 죽었다.

혼자가 됐다. 여섯 살 때다.

오갈 데가 없었다. 떠돌이가 됐다. 외갓집에 갔다. 거기서 강정초등학교를 다니다 고모 집에서 4학년을 마치고 졸업은 6촌 댁에서 했다. 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중학교를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삶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고 주변 친척들 모두 어려웠다.

“성내(제주시)에 니네 삼촌인가 공작소 헌뎅 해라, 거기 강 일 허민 중학교 보내 줄 거여.”

동네사람들 말을 듣고 제주시에 왔다. 열심히 일했지만 학교는 보내주지 않아 삼촌 댁에서 나왔다. 먹여주고 재워줄 곳을 찾아야 했다. 칠성통 아주반점(?)인가 중국집에서 일하다가 여관 주인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자손이 없는 분이었다. 여관 보이(그때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가 됐다. 여관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내가 할머니와 가까워지는 게 못마땅한지 괴롭혔다.

여관을 나와 무작정 육지로 갔다. 어디가 어딘지 몰랐지만 내린 곳이 충청도 홍성이라는 곳이었다. 홍성 여관보이가 됐다. 어느 날 여관 손님이 불러주는 대로 숙박계를 썼는데 “글 참 잘 쓰네, 여기서 일하기는 아깝다.” 하시면서 “나중에 여기로 찾아와 봐.” 하길래 갔더니 홍성군청이었다. “너, 학력을 중학교 졸업이라고 써봐.”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 했습니다.” “그냥 써봐.” “어떵 거짓말 헙니까?”

중학교 졸업이라는 이력에 급사라도 시켜줄 요량으로 이력서를 작성토록 했지만 그대로 군청을 나오고 말았다.

어떻게든 중학교를 가고 싶었다. 강정 고모에게 중학교 보내달라는 간절한 편지를 썼다. 제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집 나와 떠돌다 보니 중학교 진학 나이는 훨씬 넘겼다. 중학교 졸업장도 없지만 서귀포 농업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입학식도 없이 여름 지나 1학년 교실에서 공부하게 됐다. 중학교 마당에 가본 일도 없는데 어엿한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남의 집 일도 열심히 했고 군대도 갔다 왔다. 결혼 후 3남매 모두 대학에 보냈고 육지에서 다 잘 산다. 그런데 몇 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떴다. 다시 혼자가 됐다.

4·3때, 군인과 경찰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피자 가족이라며 강정 메모루 동산에서 학살했다. 어머니도 정방폭포에서 학살되고 불과 세 살 젖먹이와 3개월의 동생도 죽었다. 혼자 살아남은 여섯 살 아이는 이제 팔십을 넘겼다. 나라에서 보상을 해준다지만 보상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주는 일이다.

4·3, 징징해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 말만은 해야겠다.

그 시절 혼자 살아남아 군대도 가고 결혼해 아이들 잘 키우며 살아왔다. 그런데 사진 한 장 없는 우리 아버지는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묘역에 표석으로만 새겨 있다.

언제 어디서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표석만 있는 우리 아버지.

고향 강정에 모시고 싶은 이 늙은 자식의 마지막 한은 누가 풀어 줄 것인가.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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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숙 2024-01-31 07:46:46
오랜세월 아픈 기억들을 하나하나 알고 부터는
제주에 4.3이 그렇게 큰 사건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제라도 재조명되고 보상도 이루어 진다니 다행이며 무었보다 그 아픔들이 치유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이금옥 2024-01-30 22:39:43
4.3에 대해서 자세히 몰랐던
육지것 이지만. 제주에서 5 년을 살며
주민들과 어울리고 소통 하다보니
그아픔이 느껴 집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명예회복과 아픔이 치유되길 기원 합니다.

문성탁 2024-01-30 22:05:52
지금은 평화롭게만 보이는 섬 제주, 그 이면에는 큰 아픔과 상처를
남긴 4.3사건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우리들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 등 우리가 모두 발 벗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