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의 색다른 제주여행] 할망 오줌줄기 때문에 뭍에서 떨어져 소섬(牛島)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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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우도 올레길의 설문대할망

할머니에게 들었던 추억의 설화

옥황상제 셋째딸이 만든 제주
빨래 바구니로 쓰인 성산일출봉
평평한 빨래판으로 쓰인 우도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어릴 적 들었던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토끼와 거북이’ 동화처럼 익숙하다. 놀거리 재밋거리 없던 시절 할머니 앞에 눈 똥그랗게 뜨고 앉아 귀 쫑긋 기울이던 추억을 커서까지 기억하기도 한다. 그 시절의 섬 아이들은 할머니가 설문대할망을 직접 눈으로 보며 겪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즘 아이들이 어느 시기까지는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굳게 믿는 것과 마찬가지다. 할머니도 단지 어릴 적 당신의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손자들에게 들려줬을 뿐이라는 사실은 훗날에야 어렴풋이 알게 된다.


“할망이 할락산(한라산)에 베개 병(베어) 누우민~이(누우면 있잖아) 다리몽뎅이가 비양도에 결쳐시녜(걸쳐진 거야).” 섬 할머니들은 설문대할망의 키가 얼마나 컸는지를 이런 식으로 역설하곤 하셨다. 한라산 봉우리를 베개 삼아 누워서 다리 한쪽을 비양도에 걸쳤다니, 아이들 머릿속엔 어마어마한 거인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 정도 체구였으니 망망대해에 섬 하나쯤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게다. 


설화로 알려진 것처럼 제주 섬은 설문대할망의 작품이다. 화산 폭발 운운하는 중학교 과학을 배우기 전까지의 믿음이지만 말이다. 할머니 말을 이어가 보면 설문대할망은 하늘에서 떨어졌다. ‘할망’이라 불렸지만 엄연히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말젯딸(셋째딸)’, 예쁜 공주였다. 호기심이 많았는지, 원래는 서로 붙어 있던 하늘과 땅을 살짝 갈라놓는 바람에 아버지 옥황상제가 노발대발하셨고, 그 죄로 하늘나라에서 지상세계로 쫓겨났다고 한다. 


지상이라고 내려왔지만 주변은 온통 바닷물로 질퍽거릴 뿐 편안히 누워 쉴 곳 하나 없었다. 북쪽으로 여러 발자국 옮겨가 보니 바다가 끝나고 육지 땅이 나타났다. 땅끝 앞에 쭈그려 앉아 양손으로 흙을 퍼냈다. 퍼낸 흙을 치맛자락에 가득 담아 돌아와선 바다 한가운데에 천천히 조금씩 쏟아부었다. 여러 차례 흙을 퍼 나르다 보니 공주의 마음에 쏙 드는 둥그런 섬 하나가 만들어졌다. 치마폭에 남은 마지막 흙을 섬 한가운데 모조리 쏟아부었더니 도톰하니 한라산도 생겨났다. 


제주에는 368개의 크고 작은 오름들이 있다. 터져 나오지 못한 용암들이 내부에서 끓으며 압력에 못 이겨 주변 여기저기를 뚫어 분출되면서 생겨났다고 과학은 주장하지만,  옛적 할머니 얘기로는 이 오름들 또한 설문대할망의 작품이다. 


그 많은 흙더미를 치마폭에 싸 들고 옮기는데 어찌 온전하기만 할 것인가. 더러 흘리기도 하고 숭숭 뚫린 치마 구멍으로 새기도 했으리라. 그렇게 여기저기 흘리거나 새어버린 흙들이 야트막하게 쌓인 게 지금의 오름들이다. 육지의 남해안도 마찬가지다. 설문대할망이 양손으로 흙을 퍼내는 과정에서 해안선이 파이고 쪼개지면서 지금의 다도해로 변했음을 상상할 수도 있다. 


아무튼 설문대할망은 그렇게 ‘열일’을 하셨다. 망망대해에 섬 하나를 만들어냈고, 그 위에 큰 산 하나와 야트막한 오름들을 수백 개나 빚어낸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할망은 고단한 몸을 뉘었다. 눕자마자 천둥소리처럼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 빠졌던 할망은 새벽녘에 눈이 떠졌다. 생리작용 때문이다. 부스스 일어나 잠시 주변을 둘러보곤 성산 일출봉과 그 바로 앞 식산봉에 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시원하게 소변을 보았다. 오줌 줄기가 얼마나 거셌던지 그 일대 땅바닥이 길게 파이며 주변 바닷물이 단번에 흘러들었다. 


지금의 소섬, 우도(牛島)는 원래는 올레 1코스 시작점인 시흥리에 붙은 땅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할망의 오줌줄기로 땅이 파이고 찢기다 보니 바닷물이 밀려들면서 육지와 이별하고 외로운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도 올레는 ‘1-1’코스다. 


잠도 푹 잤겠다, 볼일도 봤겠다, 이젠 빨래를 해야 한다. 바다 건너에서 흙을 퍼다 나르느라 속옷부터 저고리와 치마까지 온통 흙투성이다. 마침 조금 전 볼일 보다 얼떨결에 생겨난 소섬, 우도는 널찍하고 평평해서 빨래판으론 제격이었다. 오른쪽 바로 옆에 있는 일출봉은 빨래 바구니 역할을 했다. 바닷물에 적신 빨랫감을 우도 섬 위에 펼쳐놓곤 신나게 방망이질 하는 거인 할망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올레 1-1코스는 우도 섬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11㎞ 순환길이다. 성산포항에서 배 타고 20분 후에 내리는 하우목동항이 올레 1-1코스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다. 대각선으로 정반대인 남동쪽 우도등대가 코스의 중간 지점이면서 반환점이 된다. 우도봉 바로 밑에 위치한 우도등대는 해발 100m에 불과하지만, 섬 주변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우도등대 바로 밑에는 설문대할망이 아담한 동상의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반긴다. 왼손에 ‘소망항아리’라 불리는 작은 항아리를 하나 들고 있으면서, 지나는 이들에게 동전 한 닢씩을 요구하는 자세이다. 공짜로 동전만 받는 건 아니고 작은 소망 하나 정도는 보답으로 들어주시면서, 또한 이렇게 모인 동전들은 할망이 만들어낸 섬에서 어렵고 불우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꾸준히 전달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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