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시작, 그 탐색(5) 닫힌 그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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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풍상을 겪느라 허둥거리며 인생길 여든의 능선을 넘어 내렸다. 많은 길들이 가팔랐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사느라 심신이 많이 지쳤다.

3년 전, 어간에 뇌의 노고가 컸던지 뇌혈관이 막히는 질환을 안았다. 간신히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아 위기는 넘겼으나, 아뿔싸 늘 병마를 안고 사는 포병객 신세가 되고 말았다. 차마 예상하지 못하던 일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의지로 이겨내려 안간힘을 써 버둥대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게 병인가. 이전보다 마음자리가 사뭇 어수선하고 정신이 어둡고 우울하다. 하다못해 찬연한 저녁놀을 스케치북에라도 데생해 노랗고 빨갛게 다발다발 색칠하려 했는데, 그렇게라도 인생을 마무리하려 단단히 기획했는데….

해내려 한 소망이 어그러질까 봐 여간 종종대는 게 아니다. 불가사의한 게 인생살이인가. 애절하다.

고단하구나. 이제 좀 쉬어야 할 것 아닌가. 내 생을 정리할 때가 당도한 것 같다. ‘길의 시작, 그 탐색’의 마지막 쪽을 채워야 할 차례다.

내가 나고 자란 곳, 시원(始原)의 땅을 밟아 보고 싶다. 오른손에 지팡이 짚고 왼손으로 아내의 손을 부여잡고서라도 차를 타고 가 고샅에 내려 길을 꿈꿨던 애초의 그 골목길을 두 발로 걸어 들어야 한다. 내 길의 시작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여린 볕에 갈바람이 뜨거웠던 여름을 밀어내던 어느 초가을 날, 글 쓰는 고향 후배 차편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시내에서 40분 거리. 몇 년 만의 고향길은 속도가 시간을 재촉해서인지 곱절 가슴 두근거렸다. 승합차가 여섯 살 적 고샅으로 처음 나왔던 골목길 그 앞에 바짝 들이대어 섰다.

“여기가 맞네.”

뜻밖에 골목 입구가 닫혀 있었다. 허리 높이로 막아서는 돌담. 타고 넘었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무심한 월장(越墻)이었다. 눈 감고도 걸을 것 같은 정겨운 길인데, 바닥과 구석을 메운 잡초들이 너울거려 헤치며 걸어야 했다.

네 가호-부 씨, 김 씨네 그 집들은 어디 갔으며 정답던 얼굴들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간간이 풍문에 들었던 대로다. 그 사이 시간은 집들이 헐려 경작지 된 변화의 서사를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잇적에 꽤 걸어야 하던 골목길인데, 단숨에 옛 집터에 이른다. 그 어귀의 팽나무 앞이다. 수없이 오르내리던 나무, 오랜만이다.

와락 팽나무를 끌어안았다. 어림없다. 그 후로 줄기에 70년의 연륜이 더 새겨 있을 게 아닌가. 수령 백 년을 훌쩍 넘겼으리라. 가을바람에 잎이 누렇게 시들기 시작해 추레한 빛깔이다.

큰비에 물이 고이면 옷 벗고 마구 첨벙이며 뒹굴던 마당인데, 왜 이리 좁을까. 삘기 뽑아먹던 뒤뜰의 동산은 왜 저리 낮고 작은가. 옥수수가 울담 따라 열병식하듯 서 있던 우영밭, 아, 저기 밖거리 작은 방에서 산도짚으로 멱서리 짜던 증조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나를 당신 무릎 위에 앉혀 어루만지던 부드러운 그 손길….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겼다 돌아선다. 하직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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