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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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갑진년(甲辰年) 설날을 앞두고 있다. 계묘년(癸卯年)에는 정월 대보름을 하루 앞두고 입춘(立春)이 들었다. 대개는 설날에 태어난 해의 간지가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년 간지가 바뀌는 기준은 입춘이다. 그러니 지난해에는 음력 1월 14일생부터 토끼띠이고, 올해는 음력 12월 25일생부터 용띠이다. 이러한 오차는 24절기가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 데서 비롯된다.

중국 화북지방에서 고안된 24절기는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기 곤란한 태음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했다. 사주추명학에서는 24절기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입춘을 새해의 시작으로 한다.

갑(甲)은 첫 번째 천간으로, 목(木)에 속해 푸른 색이다. 숫자로는 1, 계절로는 봄, 방위로는 동쪽, 오덕으로는 인간다움, 장기로는 비장(脾腸, 금문경학파에서는 肝으로 본다), 맛으로는 신맛에 해당한다.

진(辰)은 5번째 지지로, 토(土)에 속해 누런 색이다. 숫자로는 5, 계절로는 간절기, 방위로는 중앙, 오덕으로는 믿음, 장기로는 심장(금문경학파에서는 비장으로 본다), 맛으로는 단맛에 해당한다. 갑진은 41번째 육십갑자인데, 납음오행(納音五行)에서는 등잔불, 곧 복등화(覆燈火)로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

매년 설날이 돌아오면 우리는 마음을 다진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다.

서양의 저명한 종교학자 엘리아데(Mircea Eliade)에 따르면, 한 해가 시작하는 설날은 “모든 때의 범형”이 되는 “시원(始原)의 때”이다. 모든 사건은 “시간 가운데서 생기는 것”이므로, 지금까지 생겼고, 생길 사건을 바로 잡으려면 ‘시간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태초의 때’, ‘신화적 시간’, ‘위대한 시간’을 회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 속에 있어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엘리아데가 말한 ‘신화적 시간’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첫 번째 특성은 의미 있는 행위가 그 시간을 재현하는 한 반복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성은 그러한 재현을 통해서 ‘초역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역사 가운데서 시초’를 가진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풀이되더라도 다행히 매년 설날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작심삼일이 되풀이되는 설날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온 날들 가운데 어떤 해의 첫날로서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 2월 2일부터 4일까지 제주목관아와 관덕정 일원에서는 ‘2024갑진년 탐라국입춘굿’ 행사가 열렸다. ‘움트는 새봄 꽃피는 새날’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1월 25일 입춘맞이를 시작으로 거리굿과 열림굿, 입춘굿까지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엘리아데는 “회복은 모든 의례, 모든 의미 있는 행위에 의해서 산출된 결과”라고 말했다.

신들의 고향 제주의 1만8000여 신들의 역할과 임무가 바뀌는 신구간의 입춘 축제는 ‘회복’의 의례다. 복등화 갑진년이니만큼 개인과 가정, 사회와 국가가 ‘다시 시작하는’ 좋은 일을 바란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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