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곳 만들기 위해 유물·유적에 스토리 입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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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지속가능한 성읍마을을 그려보다

국가지정 민속마을, 성읍마을

옛날 모습 원형대로 관리 원칙
주민생활 편의 예산 거의 없어
불편 때문에 떠나는 이 많아

▲국가지정 민속마을의 입지조건

국가지정 민속마을 보존제도는 1973년 개별 문화재가 아닌 면적 단위의 집단민속자료구역 지정의 법적근거가 문화재보호법에 마련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는 1984년 성읍마을, 안동 하회마을, 경주 월성양동마을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한 이후, 이어서 고성 왕곡마을, 아산 외암마을, 성주 한개마을, 영주 무섬마을, 순천 낙안읍성이 민속마을로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순천 낙안읍성은 사적(史蹟)으로, 나머지는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지정 민속마을은 ①한국의 전통적 생활양식이 보존되고, ②고유 민속행사가 거행되던 민속적 풍경이 보존되며, ③한국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민가들이 있고, ④한국의 전통적인 전원생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⑤역사적 사실 또는 전설·설화와 관련이 있고, ⑥옛 성터의 모습이 보존되어 고풍이 현저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이러한 민속마을들은 전통가옥과 자연환경이 어우러지는 공간과 더불어 역사문화와 전통민속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삶의 터전이기에,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자 역사의 고향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민속마을 법적 장치와 성읍마을 주민들의 삶의 모습

민속마을로 지정된 마을은 무형·유형의 옛날 모습을 원형으로 하여, 어떠한 변형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관리되어 왔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마을 안에서의 신축과 증개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여느 마을에서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이 이곳에는 일정부분 제한되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주민이 사는 모습도 일정부문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생활의 편의를 위해 전통적인 가옥에 실내 화장실을 만들고 거실을 넓히며,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기 위해 지붕을 높여간다. 실내 공간이 한정되어 자연히 외벽에 보일러실을 만들고 측면을 허물어 가옥의 공간을 넓혀나가거나, 잡다한 생활도구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를 별도로 만드는데, 이런 행위의 대부분은 문화재법에 의하면 불법이다. 가옥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절차가 있기는 하나, 절차가 대단히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한 반작용으로 성읍마을 내 불법건축물이 870동(2019년 현재)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이러다보니 마을 안에서 생활하는 어려움을 더 이상 감내하지 못하여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게 또한 현실이다. 정의현성 안에는 79가구가 있었는데, 이중에 마을을 떠난 주민이 거주하던 44가구를 국가가 매입하였다. 그러나 매입된 가옥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아 빈집들은 방치되면서 빨리 훼손되고 이를 보수하다보니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있음이 현재의 상황이다.

▲문화재청의 민속마을에 대한 정책의 변화와 현실

문화재청은 주민생활의 불편으로 발생한 문화재 원형 훼손을 막기 위하여 2003년에 민속마을 보존활용 및 종합정비 세부실천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민속마을 보존 및 주민의 생활편의에 관심을 보이고 퇴락·변형된 가옥을 보수하고, 사유지 매입 및 가옥철거 보상, 초가이엉 잇기, 부대 편의시설 설치 등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주민의 삶의 향상과 마을 주민으로서의 자긍심 고취에 그리 기여하지 못한다. 대다수의 예산은 원형 보존(유적·초가이엉 잇기)과 부대시설(관리사무소·전수관) 건축에 쓰이다보니 주민생활 편의에 들어가는 예산은 거의 없다. 2011년에 고시된 중요민속문화재 생활시설 기본설치기준에 따르면, 가옥의 외형을 전통적인 모습으로 두면 내부의 개조는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으로 완화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폭적인 증개축이 허용되지 않는 한 주민들의 불만은 해소될 수 없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민속마을로의 지향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읍민속마을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발전시킬 가능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 논의의 출발점은 사람이 사는 마을을 어떻게 만들고, 주민의 자긍심을 어떻게 고취시키는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주민의 삶을 거주환경 개선과 소득향상 측면으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서 가옥의 증개축은 사실상 허용되지 않는데, 이를 현실에 맞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다. 또한 주민의 소득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시설을 갖추면 근린시설로 활용하도록 해야 하는데 증개축이 어렵고 불법가옥이 있으면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하여 주민들에게 주어지는 경제적인 보상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다보니 주민들은 떠나가고 마을 안에는 노인층들만 있을 뿐이다.  

▲스토리가 있는 성읍마을

성읍민속마을의 경관은 초가, 돌담,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의 고목, 옛 관아와 성벽, 돌하르방 등의 모습으로 집약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얼마쯤 구경하면 모든 것을 본 것처럼 싫증을 느끼고 다시 방문할 만한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각각의 경관에 생동감 있는 스토리를 입히거나 만들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진다. 특정 가옥에 옛 사람들의 삶이나 유배인의 이야기를 접목시키거나, 정의현성에 머물렀던 천재시인 임제나 김상현 등의 시를 찾아내고, 훌륭한 정의현감의 행적을 들추어서 형해화(形骸化)된 유적·유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껍데기로 남아있던 경관 곳곳마다 역사문화가 깃든 풍성한 모습이 연출되고, 그러할 때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은 생생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유물 유적인 하드웨어에다 소프트웨어인 스토리텔링을 연결하는 노력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민속마을을 만드는 중요한 토대이다. 

민속마을은 사람들 온기가 피어나는, 사람들이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마을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의 삶의 불편한 부분을 개선하고 유물·유적에 스토리를 엮어내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글·사진=강문석 (사)질토래비 전문위원·성읍별곡사진갤러리 관장

※ 다음 회부터는 입춘절기를 맞아 제주의 신화에 대해 1개월 여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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