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현상 전체 성격, 개체 삶 비유 통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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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석, 前 초등학교 교장·수필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전체를 개관해 보는 일은 가치롭고 아름다운 일이다. 어떤 특정한 사물·현상을 통찰해 전체를 개관해 봄으로써 그 크기나 규모, 성격 등 본질이 드러나 그 이치를 깨달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고유한 특성인 좋음(선함·훌륭함·아름다움)에의 성향을 지닌 인간이 선한 삶을 목적으로 구성한 공동체(가정·국가·인류)에 보다 선한(좋은·행복한) 삶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체’는 어떻게 개관될 수 있는 것일까? 먼저 어떤 특정한 사물·현상에 대한 전체의 구성요소와 성격을 살펴보면 대체로 처음·가운데·끝의 세 부분으로 구분돼 처음을 구심점으로 배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 요소는 그리스 문자로 알파(α)와 오메가(Ω), 즉 처음과 끝이다. 처음과 끝을 알면 가운데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세 부분이 알맞은 크기나 규모일 때, 전체가 효율적으로 개관될 수 있다. 마치 시각작용이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대상을 볼 수 없거나, 청각작용이 너무 큰 소리나,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릴 수 없듯이 인간은 어떤 대상이 시각적으로 한눈에 인식할 수 있는 알맞은 크기나 규모일 때 그 전체를 효율적으로 개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도 ‘구멍에 든 뱀 길이를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드러나지 않은 사물이나 현상은 그 정도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강조한 “전체란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생물이든, 사물이든 간에 그 여러 부분의 배열에 있어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미는 크기나 질서 속에 있으므로 너무 작거나 너무 큰 생물은 각각 관찰이 분명할 수 없어 아름다울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은 이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여기서 위의 세 부분을 논리 전개상 여러 가지 사물들 중 인체(人體)의 구조에 비유해서 검토해 보면 크게 두부(頭部)·동체부·지부(肢部), 즉 머리·몸통·팔다리 세 부분으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이들 세 부분은 각각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자연의 섭리에 의해 자연적(본능적)으로 중추적인 머리를 구심점으로 저마다의 기능을 발휘해 제 할일을 함으로써 조화와 질서를 이루어 몸 전체인 개체를 건강하게 운영해 가는 특성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 마치 플라톤이 ‘국가’에서 “한 개인이 올바른(정의의) 사람으로 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세 부분(지혜, 용기, 절제)들이 저마다 제 할일을 함에 의해서다.”라고 강조한 대목처럼 - 이러한 특성에서 이들 세 부분은 인간 개체의 삶의 핵심 운영 요소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 생활의 보다 나은(좋은·행복한) 삶의 원리다. 이 원리를 공동체(가정·국가·인류) 삶에 적용해 상상력을 토대로 알맞게 축소 또는 확대해 보며 비유 검토해 봄으로써 그 공동체의 보다 선한(좋은·행복한) 삶의 원리도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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