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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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대상에 대한 인간의 미의식은 시대마다 달리 해석되거나 새롭게 평가된다. 대개의 명작은 저마다 시대의 미의식을 품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때의 기품을 잃지 않는다. 시대마다 늘 사회적 환경은 예술작품에 영향을 끼쳤으며 예술가의 정신적 활동은 해당 공동체의 삶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알베르티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예술이 회화이며 그것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이집트인이라고 한다. 또 고대에 어떤 사람이 햇빛이 만든 그림자의 윤곽선을 따라 그린 것이 회화의 시초라고도 한다.  회화에서 창작은 자신이 표현한 새로운 형상을 말하며 거기에는 실험이 따른다. 작품은 화가 개인의 경험과 상상력, 그리고 테크닉이 복합적으로 융합된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 제작을 위해서는 기발한 생각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의 토대가 있어야 한다. 흔히 무엇인가 잘 만들어 내는 기술을 ‘손이 좋다’라고 한다. 음식에서 ‘손맛’이 개인의 고유한 특성이 담긴 맛을 말하는 것처럼 회화에서 손은 좋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테크닉을 말한다.


다빈치의 말대로 그림에 나타나는 명암, 색채, 형태, 원근, 운동과 정지와 같이 머리에서 파악된 개념들은 손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창작물로 이어진다. 따라서 경험적 판단력과 새로운 아이디어 등 예술가의 정신활동은 결국 ‘손’의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예술로 승화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창작을 마치 샘물을 길어 올리는 행위라고 했고, 아감벤은 창작을 개인의 능력과 무능력 사이, 행동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힘과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힘 사이에서 팽팽하게 유지되는 긴장 관계로 보았다.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창작은 마치 신과 같이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보이게 하는 마법의 힘처럼 여겨진다. 화가가 ‘탁월한가, 아닌가’는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독창적으로 표현했느냐에 달려있다. 


이번 이중섭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내 안의 자연>에서는 두 화가의 자연을 보는 시선과 손맛을 느낄 수 있다. 김현숙 화가는 자연을 일상에서 돌보는 관계로 접근하면서 날마다 손으로 가꾸는 자연과 마주하고 있다. 야생의 자연과 달리 생활 속에서 쉽게 만나는 화초용 식물들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반추상에 가까우며 다루는 기법은 배채법이라는 전통 회화의 방법을 사용한다. 화면의 사물들은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집이나 꽃들이다. 집은 가정이고 마을이며, 꽃은 식물이면서 마음속에 내재된 자연인 것이다. 


김산 화가는 야생의 숲, 곶자왈을 창작의 근원으로 삼고 있다. 얼핏 자연을 모방하는 고전주의적 재현으로 보이지만 실제 이런 풍경은 그 어디에도 없다. 마음의 눈 앞에 열린 숲이라는 점에서 실제처럼 보이지만 비현실적인 풍경이므로 전적으로 상상된 장소인 것이다. 야생의 숲이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숲이기에 낭만주의적 왜곡과 과장이 습합 되어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흰 사슴은 꿈결 속 장면처럼 신비감을 주고, 비현실적인 숲은 인간이 추구하는 자연의 이상향적 모습이다. 


일상의 화초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김현숙 화가의 시선과 실제 자연 숲을 비현실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김산 화가의 시선은 창작 방식에서 서로 다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두 작가의 작품에서 자연은 저마다 해석된 세계에 대한 이미지이며, 그 바탕에는 예술가의 삶과 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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