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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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검정은 무채색이다.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신비감을 주기도 하나, 무서움‧두려움‧암흑‧공포‧죽음의 색이다. 한자 ‘黑’은 불을 피워 창이 검게 된 것, 심히 그을렸다는 의미다.

검정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에게 간섭받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의사가 뚜렷하고 주위에 좌우되지 않는 강한 면을 지닌다. 부정적 측면으로 냉담함‧비탄‧소극성을 풍기며, 대체로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심성이라 한다.

한 방송사에서 학대‧방임을 피해 집을 나온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다.

000에게 머릿속을 그려보라 했다. 자신의 머릿속을 모두 검정색으로 새까맣게 칠했다. “매를 맞았던 그때 그 순간을 지워버리고 싶어요.” 온통 검은색이었지만, 코와 입만은 하얗게 남겨놓았다. 그래도 세상과 대화하고 싶다는 표현이었다. 중3 때 아버지에게 몽둥이로 무지하게 맞은 아이가 울면서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라는 분이 어린 아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다니. 섬뜩한 일이 아닌가. 그건 이미 학대를 넘어 범죄다. 스무 살 청년이 돼도 잊지 못한다며 어깨를 들추며 숨죽여 흐느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울컥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000. 그에게 오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글로 써달라고 했단다. 눈물‧죽음‧자살…. 그가 택한 단어들이다. 그러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단숨에 나온 사람이 아빠. 아빠와 나는 매우 불편한 관계,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빠라고. 단호하게 내뱉더란다.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한 여인으로부터 기막힌 얘기를 듣고 까무라칠 뻔했다. 자식인 친딸을 수년 동안 성폭행했다는, 아빠라는 그 사람은 성직자라 했다.

필부필부에도 끼지 못할 그런 인간이 성직자라니, 인면수심(人面獸心)도 분수가 있지. 그게 어떻게 사람인가. 그나마 그 출연자, 다행히 웃음을 잃지 않아 밝은 표정이었다. 잔혹한 과거를 마음으로 다스린 강건한 의지의 여인이었다. 그분은 현재 성폭행을 당했던 어두운 과거를 가진 여인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얼마나 값있는 삶인가.

000은 자신의 온몸을 마구 갈색으로 칠해놓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떠난 것들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교차하는 색깔로 보였다. 기억에도 없는 엄마이지만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년원을 통해서 심리분석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이 아이들은 소년원을 나가면서 다시 ‘관심 밖 아이들’이 된 상태다. 도움을 받으려면 다시 교정시설로 들어가야만 한다. 희생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난 적지 않은 학대‧방임 청소년들이 지금 놓여있는 현주소다.

내 손주 둘, 스무 살 손자와 바로 아래 고3 손녀가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가 왜 그립지 않을까.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애써 철든 척 새치름하는 걔들에게서 눈을 돌려온 게 어디 한 두 번인가. 안쓰럽구나, 어머니 얼굴을 모르고 자라는 내 아이들. 빌고 싶다. 걔들 머릿속으로 제발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기를….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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