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된 삶에서 희망 건져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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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The Dead)’(1907)이 이번 4·3문학회의 독서토론 작품이었다. K형이 ‘더블린 사람들’에 나온 작품들 중 왜 하필 이 작품을 선정했는지 의아스러웠다. 조이스는 “나의 의도는 우리나라의 도덕사의 한 장을 쓰는 것이었고,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내게는 마비의 중심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더블린을 배경으로 선택했다.”라고 했다. 육체적·도덕적 마비에 걸린 신부를 다룬 ‘자매’, 진정한 사랑보다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애러비’, 신분 상승을 꿈꾸지만 허망하게 좌절되고 마는 ‘에블린’, 능력이나 직업에 불만을 품지만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는 인물을 다룬 ‘대응’, 시의원 선거운동을 돕겠다고 나선 이가 남을 헐뜯고 경제적 부수입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담쟁이 날의 위원회’ 등 ‘더블린 사람들’은 마비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그려진다.


마비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적응한다는 것이다. 폭력에 저항해야 하는데, 그 폭력에 적응되는 것이다.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아일랜드는 17세기 중엽부터 영국의 식민지였고, 1916년부터 1922년까지 독립전쟁을 벌여 1922년에 26개 주의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된 나라다. “우리는 아일랜드의 주인은 아일랜드인임을 선언한다. 또한, 아일랜드의 양보할 수 없는 주권과 아일랜드의 통치권 역시 아일랜드인의 것이다.”라는 1916년 4월의 ‘부활절 봉기 독립선언문’은 우리의 ‘기미독립선언서’와 많이 닮았다. 그리고 300년간 6차례에 걸친 항쟁을 걸치는 동안 친영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간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아일랜드인들은 분열했고, 현재는 남북 아일랜드로 갈라진 것이 분단된 우리 현실과 닮았다. 그런 역사 속에서 조이스는 20세기 초 혼란한 아일랜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뒤틀린 욕망과 속물근성으로 고단한 일상의 늪을 헤매는 인물들을 그려냈던 것이다. ‘죽은 사람들’에서 게이브리얼 콘로이는 연말 파티에 참여해 전통의 소중함을 강조하는데, 실제로는 친영적인 신문에 평론을 기고하면서 아일랜드 전통의 상징인 골웨이 섬에 가자는 아이버스의 제안도 거절하는 인물이다. 파티가 끝나고 아내와 함께 호텔에 간 그는 육체적 욕망에 빠져드는데, 아내 그레타가 사랑한 마이클 퓨리라는 청년의 죽음 이야기를 듣고는 퍼뜩 깨닫는다. 마이클 퓨리는 아내의 첫사랑으로 아일랜드 서부 골웨이에 살던 가스공장 노동자로 폐병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그레타를 만나기 위해 빗속을 지키고 섰던 인물이다. 그레타와 헤어진 후 그는 일주일 만에 죽음을 맞이한다. 게이브리얼은 “늙어서 비참하게 시들어 사라지는 것보다 차라리 열정이 가득한 영광의 순간에 다른 세상으로 용감히 뛰어드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과거에 얽매여 선진국 문화에 영합하려는 자신과 이모들은 죽은 자이고,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았던 마이클 퓨리가 죽었지만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K형은 ‘죽은 사람들’에서 20세기 초 타락한 정치와 영국 지배, 폐쇄적 민족주의, 가톨릭의 압도적 영향 등으로 활력을 잃어버린, ‘마비된 삶의 모습들 속에서 그나마 희망을 발견했던 모양이다. 조이스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이라고 식민지 조선을 이야기하는 ‘만세전’(1922)을 떠올렸고, 한국 근대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제주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무자비하게 파괴된 제주의 영혼을 떠올렸다. 어떻게 이 마비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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