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공장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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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 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식물의 잎 초록공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에서 초록초록 초록소리가 들린다. 나뭇가지 끝에서도, 흙에서도, 오름에서도, 숲에서도 따뜻한 온기와 버무려지며 초록이 부풀어 오른다.


지난겨울 초록공장은 보수공사로 쉬었다. 그동안 사용했던 부품들을 점검했다. 녹슨 곳이나 고장 난 곳은 없는지, 물을 받는 뿌리는 물론 줄기 곳곳 막힌 곳은 없는지도 빠짐없이 확인했다.


점검을 끝낸 초록공장은 따뜻한 봄과 함께 본격적인 가동 채비에 돌입한다. 생산품 주문도 조금씩 늘어난다. 


이에 맞춰 초록공장은 초록기계 잎을 하나둘씩 늘린다. 기계가 차지할 공간도 넓혀간다.


벌써 풀가동 들어간 초록공장도 있다. 보리밭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리밭 초록공장은 강추위 하얀 눈에 덮여 있었다.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짙은 초록을 발산하며 식량 생산에 눈코 뜰 새 없다.


다른 초록공장들도 밀려들 주문에 대비해 조금씩 가동 수위를 끌어올린다. 최대 성수기는 여름이다. 이때는 줄기와 뿌리와 가지 등 식물 기관마다 식량을 달라는 아우성으로 가득할 것이다. 햇빛 재료도 충분히 공급된다. 그러면 식물도 공장가동률을 한껏 끌어올릴 것이다.


이처럼 초록공장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기계는 엽록체다. 엽록체에 있는 초록기계에서 식량을 만든다.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태양이 보내는 햇빛과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버무려 설탕과 녹말을 만든다. 


이렇게 생산한 식량으로 줄기를 튼튼하게 한다. 양분을 많이 흡수할 수 있도록 뿌리도 키운다.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잎도 넓힌다. 다음 세대를 이을 꽃을 피우고 열매도 알차게 맺는다. 
그런데 식물은 많고 많은 색깔 중에 유독 초록공장을 선택했다. 청색공장도 아니고 적색공장도 아니다. 이에는 이유가 있다. 식물이 식량을 생산하는 데는 아무 재료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햇빛 재료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재료가 있다.


햇빛은 수많은 파장으로 이뤄져 있다. 파장은 빛이 움직이는 주기의 길이다. 파장도 일정하지 않다. 주기가 긴 파장이 있고 짧은 파장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파장의 빛이라고 해서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범위에 있는 파장만 보인다. 그것은 아주 짧은 파장도 아니고 아주 긴 파장도 아니다.


그 파장은 햇빛 파장의 중간 범위에 있는 가시광선이다. 가시광선의 뜻은 말 그대로 햇빛이 눈에 보인다는 뜻이다. 가시광선은 무지개색으로 이뤄져 있다. 파장이 긴 쪽에서부터 짧은 쪽으로 빨주노초파남보 색이다.


초록공장은 이들 무지개색 가운데 긴 파장인 붉은색과 짧은 파장인 보라·청색만을 식량 재료로 흡수해 사용한다. 이 색의 재료가 들어오면 초록공장은 들뜬 기분처럼 가동이 빨라진다. 반면에 중간 파장에 있는 초록색은 식량 재료로 쓸 수 없어 되돌려 보낸다.


그렇게 반사된 초록색은 나뭇잎에 남아 우리 눈을 초록 초록하게 만든다. 초록공장이 힘차게 돌아가면 갈수록 초록색도 옅은 초록에서 짙은 초록으로 더욱 짙어진다. 우리 마음도 초록공장 소리에 들떠 오름으로 숲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어느새 마음속까지 초록 초록해진다. 이렇듯 올해도 여름으로 이어지는 초록공장 치유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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