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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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묘를 이장하려 하는데 특별한 절차가 필요한가요? 누구에게 맡기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처남과 상의를 해 서로가 편한 날로 잡아 장례 업체 직원들과 산에 오르는데 갑자기 먹구름에 비까지 내려 앞이 깜깜해지는 거예요.

정말이지 한기가 느껴졌고 큰일 나겠다 싶어 잔뜩 움츠려 들게 되고, 이런 일에 산전수전 경험이 많다 하는 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장비를 철수시키는 거예요. 뭐 하는 짓이냐 따지고 싶었지만 정중히 계약금을 돌려준다고 하니 급한 건 우리 쪽이어서 혹시 하는 두려움 때문에요….“

반신반의. 억지로 이해하는 받아들임이다. 노여움을 푸시고 편히 쉴 수 있는 터전으로 옮겨 드리겠다 제를 지내고 땅을 파헤치는데 어휴 한숨 소리가 절로 났다.

세월이 겹겹이 쌓이고 지났지만 뼈는 군데군데 흩어져 있고 냄새는 고약하다. 나무 뿌리는 엉켜 있고 머리카락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니 지켜보는 가족들도 비통한 표정에 숨소리조차 조심스럽다. 하지만 누구 탓을 하는 원망은 사치고 앞으로가 중요하다.

망자의 남편은 죽음의 흔적조차 모르는 딱한 처지. 이름만 남아 있고 자식들마저 세상을 뜬 지 오래라 누구의 보살핌도 받기 어렵다.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 효도라 셈 치고 근처에 있는 수목장에 모시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괜한 오지랖 인 것 같지만 마지막 인사에 정성을 보태기로 했다. 정해진 가격이 있어 선택의 폭은 좁지만 숨어 있는 진짜는 어디에나 있다. 나무의 모양새나 기가 흐르는 방향, 발끝이 전하는 예민함에 잠재적 본능을 깨워야 함은 물론 음양의 조화와 낮과 밤의 차이, 계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수맥은 어디서부터 오고 꺾이며 없어지는 부분까지 꼼꼼히 따져 실수하지 않았나 확인을 거듭해야 한다.

겨울이지만 꽃의 향기가 맡아지는 곳에 안장을 하고 나니 착한 보람이다. 고운 미소로 꿈에 나타나셔서 품으로 안아 주셨다는 들뜬 목소리는 예고편에 불과하고 아름다운 반전은 시작됐다.

한 지붕 두 식구 겉으로만 돌던 딸이 화해를 청해왔고 달라진 모습은 자랑으로 변해졌다. 오십 보 백보 달라지지 않던 사업도 뚜렷한 상승세가 눈으로 보이며 때맞춘 도움으로 상상했던 그림이 현실이 돼가는 기쁨이다.

언제나 최고였지만 흙 속의 진주. 외롭고 쓸쓸했기에 존재감의 가치는 더욱 빛나질 것이다. 가장 노릇에 어깨에 힘이 실려지니 아프다 했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과 활기가 되찾아졌고 집안의 사랑이 넘쳐나니 조금은 부끄러웠던 과거와도 깔끔한 이별인사와 함께. 새로운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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