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을 썰며
호박을 썰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오승익 수필가

호박 서너 덩이가 선반 위에 줄지어 있다. 중학 절친이 텃밭에서 재배한 것과 아내의 지인이 준 것들이다. 하나마다 이웃의 온정이 도톰히 배어 있는 듯하다.

언젠가부터 호박 써는 일을 떠맡게 되었다. 잘 익은 호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끝을 곧추세워 푹 찌른다. 가을 땡볕에 단단하게 굳어진 껍데기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다시 칼자루를 움켜쥐고 호박의 주름골을 힘껏 찌르니 체념한 듯 쩍 갈라진다. 이등분을 거듭하는 동안 호박에 대한 편견들이 일순 머리를 스친다.

눈의 간사함 때문일까. 매러비안의 법칙 탓인지 사람들은 흔히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을 곧잘 한다. 꽃이라면 양귀비 같은 기화요초이거나 화사하고 단아한 자태를 떠올리게 되는데 호박꽃은 크기도 하려니와 그 모습이 쭈글쭈글하고 수더분하여 어느 여인의 헝클어진 머리 다발 같아 그러는 것 같다. 또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나?’라며 폄훼하기도 한다. 열매는 익으면 짓 누렇고 울퉁불퉁 산골짝 같은 고랑이 생겨난다. 껍질 또한 단단하여 힘들게 썰고 벗기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그 맛을 볼 수 있다. 그런 험상한 호박이 매끄러운 표피를 지닌 수박이 될 수가 없다는 뜻일 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호박에는 긍정의 요소가 더 많은 것 같다. 즉, 비타민 A가 잔뜩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 산후 부기 제거, 중풍 예방, 숙취 해소, 이뇨 작용 등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인가.

외형상 비록 천대받는 호박꽃도 나름의 매력으로 벌과 나비를 끌어모아 수정을 하고 보름달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 암꽃과 수꽃은 따로 피고 같은 줄기의 근친혼을 하지 않는다. 혹 동방예의지국의 근원이 호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억측이 들게 한다.

열매는 볼품없이 주름 일색이지만 평생 성형할 줄을 모른다. 물려받은 DNA를 탓하기는커녕 어떤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과묵하리만치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또한 갈치와 함께 국을 끓이거나 떡, 엿, 죽, 범벅, 찬으로 만들면 절로 침샘을 자극한다. ‘탕쉬’라는 이름으로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는다. 길게 뻗어나가는 넝쿨, 넙데데한 호박잎, 올망졸망 꽉 들어찬 씨앗처럼 자손들이 오래 번성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일 것이다.

껍질 속에는 모세혈관처럼 엉킨 탯줄에 수많은 씨앗이 촘촘히 매달려 있다. 한 철 세파에 휘둘리며 두꺼워진 껍데기는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는 방어벽이다. 씨앗은 파종 후 사나흘이면 싹을 피워낸다. 다산에 속성식물이라고 할까. 인구 억제를 나라의 정책으로 펴 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외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져가는 작금의 아이러니를 어찌해야 할까. 아이 낳기를 꺼리는 세태에 호박이 주는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 봐야 할듯싶다.

호박 넌출은 울타리든 지붕이든 거침없이 타고 오른다. 비바람에 시달려 뒤집혀 지고 폭양에 달구어지면서도, 금세 모습을 가다듬고 묵묵히 촉수를 뻗쳐나간다. 어떤 장애물이 가로놓여 있어도 자연이 내리는 섭리라 수긍하며 햇살과 싱그러운 공기, 때때로 내려주는 비를 양분 삼아 다가올 잉태의 순간만을 위해 투지를 불태운다. 한때의 시련은 앞으로 뿌듯하게 차오를 기쁨이 있기에 능히 극복할 수 있다.

견자비전(見者非全)이다. 호박을 함부로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좀 더 들여다보면 끈질긴 집념과 긍정의 요소가 함빡 들어 있는 게 호박인 듯싶다. 세상 만물의 본체도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까. 편협하게 쌓여 있던 일상의 관념이 비로소 허물어지는 것 같다.

상념에서 벗어나니 잘게 토막이 된 황금 과육들이 한 양푼 소복하다. 입맛을 돋우기 직전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