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주는  자에겐 풍요를, 배척하는 자에겐 저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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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신, 풍요의 상징·반인간적 속성 지닌 역설적 존재

박대하니 사경 헤매다가 심방 불러 큰굿하니 부자 돼
탐라국 창세신화를 다룬 제주남초등학교 벽화. 탐라국은 독자적이고 독특한 창세신화를 갖고 있다.
탐라국 창세신화를 다룬 제주남초등학교 벽화. 탐라국은 독자적이고 독특한 창세신화를 갖고 있다.

▲창세신화와 개국신화가 있는 제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가 개국 될 때는 대부분 창세신화와 개국신화가 등장한다. 탐라국은 독자적이고 독특한 창세신화와 개국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 섬에서 회자되는 창세신화와 개국신화는 탐라국이 실재했음을 웅변한다. 


탐라국의 시조인 삼성의 시원은 기원전 2333년 개국한 단군조선보다 4년이 앞선 2337년이라는 설이 전해온다. 제주의 민속학자인 진성기(87)씨는 옛 탐라 선인들의 삶에서 비롯된 절약하는 냥정신, 자주자립의 분짓정신, 상부상조하는 수눌음정신 등이 제주의 3대 미풍양속이라 한다. 여기에 더하여 필자는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더하고 싶다. 탐라 선인들은 달을 보고 조수의 간만을 알고, 별자리를 보고 배의 방향을 잡았으며, 하늘과 바다와 구름을 보고 바람을 예측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항해위험을 겪기도 했던 제주 선인들은 다양한 신들을 섬기며 위안을 삼기도 했을 것이다. 

함덕 바닷가에 위치한 할망(칠성)당. 해녀들과 송첨지 영감이 할망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함덕 바닷가에 위치한 할망(칠성)당. 해녀들과 송첨지 영감이 할망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주술성과 예술성이 가미된 본풀이


제주 선인들은 할망당(성황당)이 마을의 모든 액을 막아주는 수호신이 상주하는 곳으로 여겼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당을 성스러운 곳으로 가꾸고 보존하여왔다. 마을마다 여러 신당을 모신 제주도에는 260여 개의 당이 유지되고 있다. 제의 과정 중에 당에 매인 심방이 당신(堂神)의 내력담을 구송하는데, 이것이 곧 본풀이이다. 본풀이는 종교적인 엄숙성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일상사와 관련이 깊다. 주술성과 예술성을 지닌 당신 본풀이에는 보편적 이미지와 함께 사회성과 역사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당신이 마을에 좌정하게 된 경위와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어 정착해 가는 과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사례를 뱀신 신앙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뱀은 풍요의 상징물이자 반인간적인 속성을 지니기에, 본풀이에서의 뱀은 세상으로부터 배척받은 존재로 나타난다. 배척을 받았기에 인간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있으면서, 한편으론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 자기를 위해 주는 자에게는 풍요를, 배척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준다. 이렇듯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받은 뱀은 결국 방황하다가 제주에 와서 좌정한다.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뱀신이 올라왔다고 전해지는 함덕 바당 전경. 장성룡의 딸이 뱀으로 환생했다.
뱀신이 올라왔다고 전해지는 함덕 바당 전경. 장성룡의 딸이 뱀으로 환생했다.

▲제주섬에 터 잡은 칠성신


옛날 옛적에 장나라 장설룡과 송나라 송설룡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큰 부자였지만 50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자, 온갖 제물을 준비하고 절에 가 백일 불공을 드려 딸 하나를 얻었다. 딸이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 장설룡이 천하공사, 어머니 송설룡이 지하공사 벼슬살이를 가게 되었다.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딸을 단단한 방에 가두어 놓고 떠났다. 


딸은 부모가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방을 빠져나와 부모가 갔다는 나라를 찾아 산길을 달렸다. 길은 끝이 없고, 두 이레 열나흘을 울다 보니 아기씨는 죽을 지경이었다. 마침 스님 셋이 지나가고 있었으나 아기씨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도 세 번째 스님만이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우리 절에 와서 불공을 드려 낳은 그 아기씨로구나.”하고 스님은 반가워하면서 아기씨를 장나라로 데려갔다. 이럴 즈음 딸의 안위가 걱정된 장설룡 대감 부부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웬 스님이 아기씨를 문밖에 숨겨놓고는 가버렸다. 아기씨 얼굴에는 기미가 끼고 배가 불룩했다. 이런 딸을 죽일 수도 없는 부부는 무쇠 상자에 딸을 넣어 바다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딸 태운 상자는 조류를 따라 제주바다 산지포구에 들어왔다. 


산지포구에는 이미 자리 잡은 바다 당신이 있었다. 그 옆 마을 화북포구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거기에도 이미 자리 잡은 당신이 있었다. 이 마을 저 마을 포구로 들어가려 했으나 포구마다 자리 잡은 신들이 있었다. 다행히 함덕마을 동쪽 갯가로는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 해녀들이 그 안을 들여다보니 뱀 여덟 마리가 누워있는 게 아닌가. 장설룡 딸이 뱀 일곱 마리를 낳고 뱀으로 환생한 것이다. 빗창 등으로 뱀들을 이리저리 헤쳤던 해녀 일곱과 송첨지 영감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사경을 헤매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마지막으로 점을 쳐보기로 했다. 이름난 점쟁이는 ‘남의 나라에서 들어온 신을 박대한 죄가 크다. 신을 청해서 굿을 하라.’라는 점괘가 나왔다. 그들이 심방을 불러 큰굿을 했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을 뿐만 아니라 재물이 많아지고 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해녀들과 송첨지 영감은 그 마을에 할망(칠성)당을 짓고 신을 계속 위했다. 마을 사람들도 신을 위하니 마을이 부촌이 되었다. 


모녀 뱀들은 더 나은 곳인 제주목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터를 잡고 신이 되었다. 큰딸은 추수할머니로, 둘째는 이방과 형방 차지로, 셋째는 옥지기로, 넷째는 과원할머니로, 다섯째는 창고지기로, 여섯째는 관청할머니로, 집 뒤 칠성으로 들어간 막내딸과 어머니는 안칠성으로 들어서서 모든 곡식을 거두어 주는 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세상에 대한 한을 품은 딸이 낳은 일곱 자식이 모두 뱀이 되었다. 이처럼 뱀신은 쫓겨 온 당신들 중에도 한이 많고 인간으로부터 배척당한 외로운 신이다. 그처럼 외롭기에 절해고도에 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정을 더 받았던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해본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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