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드는 소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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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 수필가

구걸하며 얻어먹고 사는 사람을 거지라고 부른다. 거지를 거지라고 부르는 그 자체도 엄청난 업신여김인데 더해서 “양아치, 동냥아치, 비렁뱅이”라고 얕잡기 일쑤다. 얼마나 하찮게 여기면 그렇겠는가. 그런데 요즘 하찮음을 감수하며 비렁뱅이를 자처하는 멀쩡한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다음 달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날이다. 아직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진 않았지만, 선거구별로 대진표가 거의 확정되고 거리를 뒤덮은 현수막, 쓰레기처럼 함부로 버려진 숱한 명함이 때가 임박했음을 말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출마한 사람들. 출퇴근 길이면 네거리 길목 한자리를 차지하고 90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며 손 흔들기를 반복하는 저들은 누구인가? 선거 때만 되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머슴이 되겠다고 나서는 저들은 지금까지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한두 명도 아니고 어디서 그렇게 쏟아져나오는 것일까?

중앙집권적 임명제 관료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도 선출직은 있었다. 지역별 자치 조직인 향약(鄕約)을 운영하는 좌수, 별감 같은 향임(鄕任)은 향약의 구성원인 향원(鄕員) 중에서 선출하였다. 향촌규약에 따라 지역민의 교화와 권선징악, 상부상조가 목적인 향약의 책임을 맡은 향임들이 오히려 수령에 빌붙어 자신을 뽑아준 향촌민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핍박하는 존재로 변질하는 경우가 많았다. 향민들은 이런 악질 향임을 “비렁뱅이 벼슬”이라는 뒷말로 욕하고 비웃었다. 명분과 체면이 우선이었던 그 시대에도 향임이 되기 위해선 유권자에게 사탕발림의 약속을 하며 표를 구걸했든가 싶다.

정치판에서 선출직에 입신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봉사의 일념을 앞세운다. 그렇다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유권자도 거의 없겠지만…. 소시민인 내 계산으로는 아무리 봐도 밑지는 장사인데, 오히려 큰 비용을 써가면서 자리를 맡으려는 것도 의문이다. 봉사하겠다는 뜻은 가상하고 거룩하기까지 하지만 꼭 그 자리를 맡아야만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장 군수든 나라와 내 고장을 맡길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것보다 더 큰 권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막상 뽑아 놓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그것이 문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성, 신념, 능력 같은 사람의 자질을 확연하게 판별할 수 있는 컴퓨터 하나쯤 만들 수는 없을까.

이번 선거에는 소금 같은 사람이 많이 뽑혔으면 좋겠다. 소금은 자신을 스스로 녹이고 대상물에 스며들어서 썩음을 방지한다. 스미기 위해서는 입자가 아주 작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녹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소금이 녹지 않는다면 부패방지의 역할이 아니라 무쇠도 썩게 만드는 부식의 원인이 될 뿐이다.

여럿 가운데서 자신만 도드라지고 싶고, 생색내기 좋아하는 정치인, 말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정치인, 승리를 위해선 부정도 서슴지 않는 정치인, 편을 가르고 패싸움하기를 애들보다 더 좋아하는 정치인들에게 점잖게 한마디 해야겠다.

“당신은 비렁뱅이 벼슬을 하고 싶습니까, 진정으로 봉사하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습니까? 표를 구걸하지 마시오. 소신과 양심으로 자신을 녹여서 소금처럼 유권자의 마음에 스며드는 정치인이 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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