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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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63년간의 길지 않은 삶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이들은 당시엔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빈농출신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고, 대선에서 승리하기까지 적지않은 역할을 담당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노 전 대통령의 정계 진출의 첫단추를 꿴 사람은 1980년대초 부산 재야의 좌장 역할을 맡았던 김광일 변호사다.

당시까지만해도 요트를 즐기는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은 김 변호사의 대타로 부산의 운동권 30여명이 검거된 부림사건 변론을 맡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은 교도소에서 57일간 구금돼 구타와 고문을 받은 한 학생을 만난 뒤 시국에 눈을 뜨게 됐고, 결국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김 변호사는 13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을 천거, 정계입문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는 사이비 인권운동가, 위장서민, 지역감정 이용자로 대통령이 돼선 안된다"고 비난하고 "그의 정체를 바로 알게 되면 본능적으로 그를 지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의 사이가 멀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87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대우조선 노동자인 이석규씨 분신 사건과 관련, 제3자 개입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도 뜻하지 않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검찰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던 노 전 대통령 구속을 위해 세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하룻밤새 세 차례 당직 판사와 법원장 자택을 찾아다니며 영장을 청구하는 의욕을 보였다.

구속영장 청구를 지휘했던 부산지검 공안부장이 주선회 변호사였다.

이후 주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을 구속한데 대해 "공직자는 민간인이 통치하든 옷을 벗은 군인이 통치하든 직책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대검 감찰부장 등 요직을 거친 주 변호사는 지난 2001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천에 따라 헌재 재판관으로 임명됐다.

주 변호사는 2004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심리의 주심을 맡았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노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육체적, 심리적 스트레스가 누적됐던 주 변호사는 탄핵선고 며칠 뒤 각혈을 시작해 왼쪽 폐의 절반 가량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과도 기구한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정 최고위원과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내면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지만 `공동정부'를 둘러싼 이견으로 대선 전날 정 최고위원의 지지 철회 선언이 나왔다.

그러나 정 최고위원의 지지 철회 선언은 오히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결집을 가속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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