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문(訪仙門)으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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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경 방선문에서는 계곡음악회가 있었다. 옛 선인들이 시를 읊고, 담소를 나누며, 꽃구경을 하던 장소이기에 그날의 계곡음악회는 아주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방선문 계곡의 마애명(磨崖銘)을 손수 찾아내고 해석한 후 한 권의 책자를 만듦은 물론, 음악회의 기획과 열창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소화해낸 한 성악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정말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필자가 방선문을 처음 찾은 때는 1999년 7월 중순경이었다. 그러니까 벌써 5년 전의 일이었는데, 그때의 목적은 방선문 마애명의 몇 사례를 수업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진촬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소나기 때문에 옷과 카메라는 흠뻑 젖어버렸고, 그래도 몇 장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기대했던 사진자료도 날씨 때문에 글자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언젠가 다시 한 번 날을 잡고서 방선문을 찾아야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5년이란 시간이 흘러가 버렸고 방선문에서 계곡음악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서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마침 음악회가 열리던 그날은 방선문의 신선(神仙)들이 도와줬는지 모든 행사가 끝날 때까지 날씨는 아주 좋았고, 따라서 주변의 암벽에 걸린 마애명도 새로운 기분으로 접할 수 있었다.

요즘처럼 날씨가 찌는 날이면, 필자는 가장 먼저 방선문 계곡을 떠올리게 된다. 그 이유는 방선문에는 자연이 있고, 신선이 있고,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방선문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천(漢川)의 중류에 자리잡은 경승지 중의 하나다. 옛 선인들이 ‘들렁귀(登瀛丘)’라 부르며 주로 봄과 여름철에 즐겨 찾았던 계곡 피서지였다.

방선문(訪仙門)은 ‘신선을 찾는 문’이란 의미이며, 여기서의 문은 용암이 흘러오다가 엉키면서 하천 바닥에서 위로 솟아오른 암벽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의 문인 셈이다. 더불어서 영주십경 중 영구춘화(瀛邱春花)는 바로 방선문(들렁귀) 계곡에서의 봄꽃 구경을 말하는 것이다.

방선문을 찾아가면 항상 일정한 장소에는 물이 고여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가족끼리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정담을 나누며 수박이라도 잘라 먹는다면, 그 이상의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물웅덩이를 하나씩 차지하여 웰빙 물놀이를 즐겨도 좋을 것으로 여겨진다.

방선문의 신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신선을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신선이 찾아들 만한 암벽(문)을 찾아보거나 혹은 신선이 앉아서 수련이나 명상을 할 만한 암반 위의 명당자리를 찾아보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런 암벽(문)이나 명당자리를 발견하거든, 지체없이 스스로 신선이 돼 보기를 권한다.

방선문의 역사는 두껍게 쌓이고 신비하게 솟아오른 바위의 이곳저곳에 쓰여 있다. 제주를 찾았던 목사.판관.현감 등이 남긴 230개 이상의 제액(題額)과 10수의 제영(題詠)이 고스란히 잘 간직되어 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찾아 확인하려는 욕심은 버리고, 마음에 드는 선인의 제액이나 시(詩)를 먼저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아무튼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도 좋지만, 자연과 신선과 역사를 만날 수 있는 방선문 계곡으로 발길을 돌려보는 것도 훌륭한 웰빙 피서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방선문을 한 번 찾아가 봄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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