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라는 괴물
경제라는 괴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내가 몰라서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 기억에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그 어느때 한 번이라도 그들이 파업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상적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때가 거의 없었다는 것. 파업 당사자 아닌 그 어떤 사람들 한 명이라도 파업에 대해 ‘공정한 잣대’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드물었다는 것.

심지어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다른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파업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냉담한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이젠 노동자들의 파업도 내가 파업하면 정당한 것이고 남이 파업하면 부당한 것이 되어버린 것일까.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사람들이 그 앞에서는 하나같이 꼼짝 못하는 한 괴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번에 ‘하투’라 불리는 파업을 철회한 엘지정유 노동자들은 돈 많이 받는 ‘귀족노동자’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여수에서는 일등 신랑감이 바로 그 곳 엘지정유를 포함한 여수공단에 다니는 사람들(물론 정규직이어야 할 것이지만)이라고도 했다. 세간에 돈 많이 번다고 소문이 난 바로 그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 임금인상건도 당연히 포함된 파업이었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노동자의 유일한 무기가 파업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도 어디에서 파업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마음이 절로 무거워지는 ‘보통시민’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자꾸 파업하면 그러잖아도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이러다가 정말 우리나라는 영영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리지는 않을까, 온갖 불길한 상상이 뒤를 잇는 것이 이젠 거의 습관화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나라를 걱정해서도 아니다. 단지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내 일상이 불편해질 것을 나는 겁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엘지정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내건 협상 요건 중에 비정규직 정규직화건과 지역사회발전기금 출연 요구건을 보고는 솔직히 나는 그들이 파업한다고 불안해 했던 것이 민망하고 무안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임금인상(사실 그것은 아무리 돈을 많이 받건 적게 받건 노동자들이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사안 아닌가)건뿐 아니라, 일정부분 공동체에 대한 책무의식이 반영된 사안들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체하고 그저 관성적으로 노동자 파업, 그것도 정유회사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혹시 기름값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를 염려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되, 경제도 어려운데 돈도 많이 받는다는 귀족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다니! 하는 우리 사회 ‘보통시민’들의 행태가 나는 또 민망하고 무안해졌다. 심지어, 어떤 신문기자는 우리를 열받게 하는 것은 정치인만으로 충분하니 돈 많이 버는 노동자들까지 우리를 그리하지 말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엘지정유 노동자들이 소위 우리를, 노동자 파업에 늘 걱정부터 앞섰던 것이 사실이긴 한 ‘보통시민’들을 열받게 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늘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물론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또 가만 생각해 보면 경제는 항상 어려웠던 것도 같다. 사람이 물질에의 무한욕망을 절제하지 않는 한, 우리의 물질에 대한 욕구는 항상 ‘2% 부족’ 상황인 것이고 체감경제는 항상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을 경제에다만 둬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정당한 요구, 모든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들을 ‘경제도 어려운데’라는 말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 나는 두렵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파업은 무슨 파업이며 역사는 무슨 역사며, 그리하여 종내는 사람은 무슨 사람이냐는 말 나올까 나는 겁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제는 내게 괴물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
제주일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