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環狀)의 오름, 幻想(환상)의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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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 가는 가을날에 송당마을 남쪽에 위치한 아부오름을 찾았다. 어느새 기온이 많이 떨어져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아부오름을 찾는 사람들은 많았다. 영화 이재수의 난을 촬영한 이후부터 아부오름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내의 많은 오름들 중에서도 아부오름처럼 신비한 분화구와 아름다운 능선을 지닌 오름은 드물다. 한 번이라도 아부오름을 찾았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축구장 같다든지, 또는 고대로마의 원형경기장 같다는 비유를 서슴지 않는다. 아울러 탐방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분화구의 매력에 매료돼 버린다.

보통 비자림로(1112번)를 타고 가다가 도로변에서 아부오름을 바라보면, 오름 능선은 단순하게 한 일자(一)의 형태로 보일 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오름 정상에 올라서지 않으면, 주변에 흔한 오름과 똑같은 여운만을 남길 뿐이다. 그런 이미지가 정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 흥분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과장해서 말하면, 여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미지의 섬을 마침내 발견한 것과 같은, 그런 희열감을 느끼게 된다.

아부오름은 최고 정상부가 301m의 높이를 보이나,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은 그리 급하지 않기에 탐방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도로변에서 정상까지의 산행시간도 기껏해야 15분 안팎이다.

아부오름은 일단 분화구 안쪽 사면에 쌓여 있는 분석(scoria)을 통해 볼 때 열하분출에 의한 분석구(噴石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부오름과 같은 대형 화구경(火口徑)을 가진 분화구가 형성되려면, 과연 어떠한 분화활동을 했을까하는 배경은 우리 모두에게 큰 의문점으로 다가온다. 바로 그 의문점은 탐방객들이 감탄해 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아부오름의 진미는 정상부 능선에서 분화구 안쪽을 감상할 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화구 안의 정경은 주변의 자연을 축소시켜 끌어다 놓은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담과 삼나무 군락, 그리고 초지와 방목 중인 소의 모습이 영락없이 과거에 흔히 보던 제주도 농촌의 모습이다. 분화구 안은 한 번에 약 200~300마리의 소나 말 방목이 가능해 보일 정도로 넓은 초지가 형성돼 있다.

아부오름은 일찍부터 초지를 만들어 소와 말의 방목을 해온 까닭에, 분화구 주위를 빙 둘러가며 삼나무를 심고 소나 말의 이탈을 방지하고 있었다. 현재의 삼나무는 적어도 30~40년은 성장해 온 것으로 보였다.

삼나무 바로 앞쪽으로는 현무암 돌담이 1m 가량의 높이로 쌓아져 있었고 돌담의 형태는 겹담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돌담을 축조할 당시에도 분명히 분화구 안에는 돌이 없었을 텐데, 이렇게 많은 돌들을 어디에서 전부 운반해 왔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화구 주위를 휘감아 도는 삼나무 군락 외에도, 분화구 안쪽 군데군데에 삼나무를 심어 방목중인 소나 말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것은 결국 마소치기를 하는 테우리의 휴식공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흔적이야말로, 제주주민들이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에서 잉태된 지혜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1998년에 한 젊은 감독은 100여 년 전 제주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난리(亂離)를 영상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다는 격이 되고 말았다. 영화의 후유증과는 관계없이, 아부오름은 오늘도 말이 없다. 늘 대자연의 일부로서 오롯이 제자리를 지키며, 언제나 여러 손님들을 맞아들이고 있다.

많은 탐방객들은 환상(環狀)의 오름에서 환상(幻想)을 만끽하려고 찾아드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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