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도지사 임명장을 받다
2. 도지사 임명장을 받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박정희 의장 5·16 후 전국 시·도 중 제주 첫 순시’큰 관심 반영
朴의장 “金제독 제일 먼데로 가게 해서 미안해” 다독여
신고식날 “4·3 때 당한 도민들의 응어리 풀어주라” 당부
▲ 김영관 제주도지사(사진 맨 앞줄 오른쪽에서 여덟번째)가 1961년 박정희 의장으로부터 제주도지사 임명장을 받은 직후 제주도로 부임해 당시 도청 간부 공무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정희 의장의 특별한 당부
제주도지사 임명장을 받은 날은 내가 제주도로 부임하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혁명최고위원회로부터 전국 시·도지사로 발령받은 장군들이 다 함께 정부 중앙청사에서 부임지로 떠나기 직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신고식을 하던 날이기도 했다.

 

다른 시·도지사들은 전부 육군 출신 장군인데 나만 유일하게 해군 출신이었다.
나는 박정희 의장을 5·16이후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 그 곳에서 박정희 의장은 내게 가까이 오더니 내 귀에다 대고 “김 제독, 미안해 제일 먼데로 가게 해서. 가서 수고 좀 해줘”라고 하더니 “그 대신 지방시찰 가게 되면 제일 먼저 제주도로 갈게”라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인 줄 알았지 실제로 그렇게 하는 줄은 몰랐다.

 

박정희 의장은 또 내게 제주도지사 임명장을 주시면서 “제주도는 특수한 여러 가지 여건이 있으니까 가서 잘 좀 해야겠다”며 특별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박정희 의장이 언급한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은 지리적인 문제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떠나 4·3사건의 아픔을 시사한 것이었다.

 

나는 박 의장이 제주도민의 아픈 심정을 남다르게 느꼈던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4·3사건에 대해 당시 제주해협을 경비하고 5·10선거 때 유엔선거감시단이 제주를 방문할 때 동행하고 그랬으니까 알고 있었는데, 박정희 의장은 장군으로 4·3사건의 전장(戰場)관계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박정희 의장은 내게 제주4·3사건에 대해 “우리 제주도민들이 그 때 당한 여러 가지 가슴에 맺힌 것을 혁명정부인 우리 군이 풀어줄 수밖에 없다”며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을 중심으로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할 것을 특별히 지시했던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의장은 당신이 약속한 대로 5·16이후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9월초 전국 지방시찰을 하면서 제주도를 가장 먼저 찾아 주었다.
박정희 의장이 제주도를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그만큼 제주도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자 제주도의 발전 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가서 알게 됐다.

 

제주로 부임하기 전 제주도지사를 역임했던 임관호 지사와 길성운 지사에게 연락했는데 임지사와는 연락이 안됐지만 길 지사에게는 인사를 하고 제주도정 운영에 대한 좋은 조언을 듣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길 지사는 내게 “제주도민들은 순박하기 때문에 도지사가 선정을 베풀면 도정에 잘 협조할 것이다. 단지 어려움이 있다면 도세가 약하기 때문에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이 부족한데다가 지원을 받아내기가 어려워 대 중앙정부 절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를 겸해 당신의 도정 경험을 얘기해 주었다.

 

또 그동안 나와 교분을 이어오던 제주도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던 장시영 원장에게 연락해 도지사로 부임하게 돼 걱정된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자 장시영 원장은 “걱정 말라”며 “제주도는 섬이니까 해군이 제일 인연이 깊은 것 아니냐. 육군출신보다 타 군인 해군 출신이 도지사로 오게 돼 오히려 잘됐다”는 식으로 말해줘 안심이 됐다.

 

나중에 보니 5·16이후 제주도민사회에서는 후임 도지사가 누가 될지 초미의 관심사였고 4·3사건을 겪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육군 출신 보다는 해군 출신을 덜 부담스러워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록 5·16은 육군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도지사는 해군에서 오니까 나를 잘 모르지만 해군출신 도지사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도민사회에서 형성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나는 도지사로 발령 받은 지 6일 만인 1961년 5월 30일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큰 딸만 빼고 아내와 아이들 셋을 데리고 민간항공기인 KNN(대한항공공사)을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늘 배를 이용해 제주도를 가던 내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제주~서울간 비행기는 1주일에 1, 2번 정도 부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었는데 제주의 기상상태가 나쁜 날이 많아 툭하면 결항되기 일쑤였다.
나는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제주도지사로서 해야 할 일과 그 밖의 많은 생각들로 조금은 긴장을 했다.

 

5·16이후 지금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5·16이 군에서 존경받고 신망이 높은 박정희 의장 주도로 일어난 만큼 잘 하리라 믿고는 있었지만 내가 혁명정부에 참여하거나 제주도지사로 발령 날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군 생활만 하다 행정기관에서 더구나 도백으로 어떻게 수행해야 하나? 여기서 잘못하면 현역으로 다시 복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나에게 행정은 어렸을 적 고향의 면사무소, 읍사무소, 군청 정도가 다였고 경상남도 진해에 근무하던 이승만 대통령 시절엔 경남도지사는 만난 적은 있지만 도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도지사 직을 마치면 반드시 군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잘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현역 군인으로 나의 군 일생에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전국 시·도지사 가운데 유일한 해군 출신이어서 해군 대표성 문제도 있고 박 의장이 당부한 내용도 있고 해서 어쨌든 잘 해야 한다는 압력과 부담이 상당했다.

 

이처럼 나는 제주도지사로 부임하면서 불안도 하고 혹시 잘못되면 현역도 끝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안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민간인 도지사가 아니라 현역 군인 도지사로서 하얀 해군제독 정장을 갖춰 입은 차림으로 낮 12시께 제주비행장에 도착했다.
내가 제주도와 인연을 맺은 지 13년 만에 또 다른 차원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제주비행장 도착
제주비행장에는 혁명최고위원회의 사전 지시가 있었는지 제주도청의 김벽파 총무국장과 박경철 제주계엄사무소장(해군 대령), 조광호 도청연락관(해군 중령)이 나를 마중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제주도지사로 부임하면서 해군사관학교 출신 장교 중에 제주도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제주도출신으로 오현고를 졸업한 이겸우 대위를 특별히 부관으로 삼아 동행했다.
이 대위는 내가 제주도지사직을 수행하는 동안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많은 도움을 준 부하이자 후배였다.

 

나는 마중 나온 이들과 함께 바로 제주도청으로 향해 도의 공직자들과 도청 내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당시 분위기로 공무원들은 시내에 나가 외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본 공무원들은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부드럽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고 나는 제주와 큰 인연이 있는 사람처럼 돼버렸다.
모든 것이 달리 생각할 필요도 없이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됐다.

 

점심 식사 후 공보실장이 나에게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고 나도 취임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반겼다.
나는 서울에서 군 출입기자들과 만나서 가까이 했던 적도 있고 해서 도청을 출입하는 모든 기자들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예정에 없던 회견에 흔쾌하게 응했다

▲제주도지사 취임 기자회견
오후 2시부터 해군경비사령관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은 내 생각과 달리 기자들이 나를 우호적이고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경계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서울에서 기자들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계하고 그랬는데 제주 기자들은 기자의 근성이나 기자의 생리로 나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기자들을 전폭으로 믿고 도정운영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언론기관에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 번째 인상이 내게는 이처럼 아주 중요했다.
나는 기자회견에서 제주도지사라는 중책을 맡아 소임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혁명정신에 입각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도정 방침은 제주도의 모든 실정을 파악한 후에 발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자들은 간단한 나의 취임 회견에 부족함을 느꼈는지 대략적인 도정운영 방향을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혁명정신에 호응해서 용공분자와 불량배를 가차 없이 적발 처단하는데 주력하고 둘째 공무원 인사는 어디까지나 공정 무사한 입장에서 인물과 실력본위로 실시하고 세 번째 인권옹호에 적극 진력하되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기본 권리를 입증하는데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나는 양심적인 공무원은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어 나는 제주도의회에서 제12대 제주도지사 공식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도지사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정리=강영진 정치부장 kang@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