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 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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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하다. 중환자 실에 한 번 갔다가 오니 내 모든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다리를 뻗치고 있는 사람을 보았었다. 다리가 굳어와서 아무도 그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내 다리를 만져 보았다. 이렇게 유연할 수가. 이렇게 유연하게 구부러질 수가. 목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끼고 있는 사람을 보았었다. 그 사람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소화도 못하기 때문에 거기 호스를 끼우고, 그 호스로 음식물도 집어넣고, 또 그리로 가래도 뽑는다고 했다. 나는 내 목을 만져 보았다.

이렇게 부드럽게 숨을 쉬고 있는 걸, 가래를 내 뱉을 수도 있는 걸.......혀가 딱딱해져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사람을 보았었다. 나는 슬그머니 내 혀를 한 번 입 속에서 굴려 보았다. 그것은 유연하게 내 입속에서 움직였다. 자유자재로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움직였다. 피부에 온통 울긋불긋한 반점이 돋은 사람을 보았었다. 나는 내 피부를 슬쩍 내려다 보았다. 이렇게 매끈할 수가........그방을 나오면서 나는 내 모양을 거울에 비춰라도 보듯이 유리의 문에 비추어 보았다. 똑발랐다. 이 정도면 괜찮아, 나는 나에게 중얼거려 주었었다.

정말 감사하다. 내 위장, 내 혀, 잘 돌아가고 있는 내 혈관, 굳건하게 땅을 딛고 서 있는 내 두개의 다리. .....

몸은 둘인데, 머리가 하나로 붙어있는 형제들을 어디선가 보았었다. 천형이었다. 누구도 어떻게 할수 없는 형벌 같은 것, 그들은 그래서 모든 일을 같이 할 수 밖에 없다고 했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함께, 세수를 할 때도 함께, 옷을 입을 때도 함께, TV도 함께,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비밀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아파도 같이 아파야 하고, 화를 내도 같이 화를 내야 하며, 슬프려 하여도 같이 슬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감사한다고 했다. 매일, 외롭지 않게 함께 있는 것에 대해서. 서로를 진심으로 아니 몸을 바쳐 걱정해야 하는데 대해서. 이제는 만약 따로 떨어져 살아야 한다면 오히려 숨을 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외로운 상황을 도저히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글쎄 그럴 수 있을까........우리가 누군가를 그렇게 한 몸이 되어 걱정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 사이에선 향기가 솟아 오르리라.

하긴 요즘엔 꽃 시장엘 가도 향기가 없다. 나는 가끔 낙동강 가에 있는 화훼 공판장엘 가곤 하는데, 거기 들어서면 기대했던 ‘향기’ 대신 쓰레기 썩는 냄새 같은 것이 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긴 당연하다. 잎들이라든가, 버려진 꽃잎들 그런 것이 한데 쌓이면 썩으리라, 썩는 곳에선 썩는 냄새가 나리라. '꽃에선 원래 향기가 나야 하는 것 아니얘요? 그런데 왜 여기 꽃들에선 향기가 나지 않을까요?‘라는 나의 물음에 대해서 나와 이제 꽤 오래 알고 지나게 된 꽃집 아주머니는 ’너무 억지로 피게 하니까, 꽃들이 정신을 잃었는가 보다‘고 대답하면서 웃곤 한다. ’한 철에 한 번씩만 피어야 할 텐데 몇 번씩 피자니, 말하자면 철없이 피게 하니까, 꽃들도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어떤 때는 산소용접기 같은 것으로 꽃들의 줄기 끝을 태워 주겠다는 친절한 아저씨도 나타나곤 한다. 그러면 꽃이 꽃병 속에서도 오래 산다는 것이다. ‘못 죽게 하는 겁니다. 죽을려고 하면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정신차리게 하는 겁니다. 잔인한 짓이지요.’.

그렇다. 요즘엔 사람들에게서도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다. 탐욕의 냄새들이 난다. 일찍이 맡아 보지 못한 그 냄새들. 곳곳에서 시멘트의 벽을 뚫고 나오는 그 냄새들.

나는 시 하나를 쓴다. 향기로운 빗방울 하나에 관한 시이다. 아니다. 빗방울 셋에 관한 시이다.

빗방울 셋이 만나더니, 지나온 하늘 지나온 구름덩이들을 생각하며 분개하더니,

분개하던 빗방울 셋 서로 몸에 힘을 주더니, 스르르 깨지더니,

참 크고 아름다운 물방울 하나가 되었다. 졸시, 빗방울 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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