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드스트롬’의 서비스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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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객이 한번 들어갔다 하면 나오지 않고, 주위의 다른 상점으로도 가지 않아 ‘쇼핑객의 블랙홀’이라고 불려지는 백화점이 있다.

미국인들이 최고 백화점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는 노드스트롬(Nordstrom)이 바로 그것이다. 패션관련 업체는 누구나 한번쯤 자사 브랜드를 걸고 싶어 하는 백화점이다.

이 백화점의 창업자 존 W. 노드스트롬은 이민자였다. 그는 187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되던 해 대장장이였던 부친이 타계하자, 학교를 그만두고 농장에서 고된 생활을 했다. 16세가 되던 1887년 겨울, 조국을 떠나 희망과 기회의 땅 미국을 향한 머나먼 장정에 나선다. 영어 한 마디 못하던 그가 뉴욕 엘리스섬에 도착했을 때 수중에는 5달러가 전부였다.

그는 철광노동자로 출발, 미시간의 벌목공, 아이오와의 광부, 캘리포니아의 철도공사 노동자로 온갖 일을 다 했다. 이렇게 땀 흘려 모은 돈으로 1896년 시애틀 북쪽 80㎞ 떨어진 알링턴의 스웨덴계 이민자 거주지역에 정착할 수 있었다.

노드스트롬은 구두수선가게를 운영하던 친구의 동업 제의를 받는다. 자신의 5천달러와 친구의 1천달러 투자로, 1901년 시애틀 파이크 4번가에 ‘월린 앤드 노드스트롬’이란 작은 구두가게를 열면서 노드스트롬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 후 의류사업으로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1963년 베스트 어패럴을 인수한 뒤 회사명을 ‘노드스트롬 베스트’로 바꾼다.

1971년 노드스트롬 베스트는 주식을 공개한다. 당시 주식공개 준비작업에 들어갔을 때, 주식분석가들은 이 회사에 조직도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들의 요청에 따라 조직도를 그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처럼 계층과 직무를 나타내는 방식으로는 조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전통적인 조직도의 피라미드 모양을 거꾸로 뒤집어 보자고 제안한다. 고객들 앞에서 무릎 꿇고 서비스해 온 기업으로서 고객을 가장 위로 모시고, 그 다음에 일선판매원, 매장지배인, 총지배인, 이사회를 두는 역피라미드 조직구조가 기업문화를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고 판단했다.

1973년에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노드스트롬’으로 바꾸었다. 자주 인용되는 노드스트롬의 뛰어난 서비스 사례로는 무조건적 교환?환불정책이다. 고객이 들고 온 제품이 새것이든, 헌것이든, 영수증이 있건 없건 고객이 원하면 두말 않고 교환이나 환불을 해준다는 것이다.

노드스트롬의 전설적인 서비스 신화는 무수히 많다. 어느 날 한 고객이 착각으로 다른 곳에서 구매한 자동차타이어를 들고 와 환불을 요청한다. 직원은 가격만 물어보고 환불해 주었다. 노드스트롬 매장에선 타이어를 판매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자신의 실수를 안 고객이 감사의 글을 신문에 기고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사례는 그것을 받쳐주는 기업문화와 최고경영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바보라고 할 정도로 우직한 노드스트롬의 ‘고객만족경영’은 창고형 대형할인점의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급백화점으로서의 명성과 실적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공동경영과 동업이 오래 지속되면 불화와 소송이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노드스트롬은 4세대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 어떠한 불화도 없이 가족을 중심으로 한 ‘화목경영’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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