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상과 우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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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상보다 개근상이 더 받기 어렵고 훌륭한 상이라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개근상을 받기 위해서는 결석도, 지각도, 조퇴도 없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성실성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몇 년의 교육과정에서 단 한번도 병을 앓지 않았다기 보다는 아픈데도 불구하고 개근을 이룬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개근상의 가치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학교에 가고 지각도 조퇴도 하지 않은 학생이 우등상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정말로 웃기는 일이다. 수업시간마다 매번 출석을 했는데 공부를 못한다? 또 며칠 밤을 세워가며 공부했는데 성적이 나쁘다? 그것은 한마디로 몸은 학교에 있었지만 또 몸은 책상에 앉아 있었지만, 생각은 다른데 있었지 않았다면 설명이 안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이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 그게 과연 개인의 성실성을 반영하는 훌륭한 지표가 될까? 만일 토익(TOEIC) 성적도 나쁘고 대학교 성적도 나쁜데 개근상만은 놓치지 않고 받은 사람이 있다면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하여 선뜻 일자리를 줄까?

회의, 모임, 잔치 등 부르는 곳도 참 많다. 그런데 출석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 자리의 의미에 충실한 것이 중요한가?

결혼식에 가는 것은 축하해주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축하할 마음이 없더라도 가는 것이 중요한가? 또 가지 못하면 부조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물론 결혼식에 하객이 너무 없어서 사진촬영 조차 곤란하면 안 될 것이지만 역시 출석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축하할 마음이 있지만 바쁘다면 부조(扶助: 곁에서 도와줌)라도 온라인으로 보내면 안될까? 요즘 청첩장에는 온라인계좌번호가 인쇄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축하할 마음이 있지만 바쁜 사람들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회의에 참석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점잔만 빼고 돌아오는 사람도 회의에 참석한 것인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아이디어를 쥐어짜는 것이 자리의 의미라고 보이는데 실은 자리만 차지하고 출석부에 도장만 찍고 오면 출석으로 인정이 된다. 어떤 경우에는 모이지 않고 전자우편이나 전화로 해결해도 될 사항을 굳이 회의라는 자리를 만들어 사람을 잡아놓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서 출석여부를 중요하게 취급한다. 바쁘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부분 출석을 잘한다. 이들의 성적을 보면, 결석자가 많아야 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결석을 하지 않고도 공부를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개근상이 중요한 것은 육체노동현장에서가 아닌가 싶다. 옛말에 ‘사람과 그릇은 있는 대로 쓴다’는 말이 있다. 육체노동의 현장에서는 출석하고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쓰일 데가 있는 것이고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런데 정신노동의 경우, 일찍 출근해서 하루 종일 사무실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고 해서 업무의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정신을 집중해서 일을 한 시간만이 업무의 성과를 내게 되어있다. 아마도 그것이 고등학교 교과과정까지만 개근상이 있고 대학 이후의 과정에서는 개근상이 없는 이유일 것 같다.

경제개발의 초창기 많은 공장노동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개근상이 중요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지식산업의 시대가 되었다. 개근상보다 우등상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출석이 강요된 것은 농업이라는 집단노동이 필요한 업무에 종사하면서 집단 구송원의 결속이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단합이나 결속보다는 우수성이 조직의 지표가 된다.

나는 우리가 자리에 나타나는 것보다 자리에 충실한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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