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꽃, 그 순정함
헛꽃, 그 순정함
  • 제주일보
  • 승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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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오락가락하는 장맛비 날씨 행간으로 살아온 세월의 깊이를 몸이 먼저 알고 반응을 한다. 찌뿌둥하던 차에 햇살이 반가워 가까운 곳을 걸었다. 기암과 괴석으로 이루어진 집 근처 건천은 요 며칠 내린 비로 괴석과 괴석 사이 여기저기에 물이 고였다.

물 고인 쪽으로 잠시 햇살 기대자 하늘빛이 반사되어 물빛마저 파랗게 곱다. 오랜만에 건천에 든 물이 반가워 아이처럼 손으로 저어보았다. 하늘도 따라 출렁거렸다. 여기 와, 야자수매트를 밟을 때마다 느끼지만 발에 닿는 촉감도 좋고, 비가 오고 난 후 차작차작 물 튈 염려 없어 걷기엔 그만이다.

적당한 경사도가 주는 긴장감과 하천 따라 길게 이어지며 어우러진 나무들이 건네는 시원한 그늘이 참 좋다. 그 에움길에 제철로 핀 수국이 두세 군데 모도록 하게 핀 모습과도 눈인사했다. 그런데 요 수국, 행인의 눈을 온통 잡아끈다.

가장자리 여린 꽃잎 곱게 펼친 헛꽃 중심으로 참꽃들, 그 촘촘한 자리는 내린 비에 온몸을 씻었는지 말갛다. 빗물 떨군 곳엔 녹색 잎은 녹색 인대로, 파란 꽃잎은 파란대로 그지없이 싱그럽다.

화사한 꽃잎들 곱게 펼친 헛꽃과 자잘한 게 하찮고 볼품없는 저 참꽃. 초라한 참꽃을 몰라보고 곤충들이 그냥 지나칠까 봐, 벌들을 유인하여 수정시키기 위해 크고 예쁜 꽃잎을 헛꽃이란 이름으로 더 화려하게 피웠다.

헛꽃의 도움에 벌들이 찾아들어 참꽃 수정이 끝나면 제 역할을 다했음을 알고, 하늘 향했던 싱싱함을 거두어 아래로 뒤집히며 서서히 시들해 간다. 가장 화려했던 모습 안으로 헛꽃의 삶처럼 종족의 번식과 안녕을 찾고자 함은 우주를 안고 사는 모든 생명체의 고급한 이치인가.

얼마 전 매스컴은 한 아동이 목숨을 걸고 집에서 탈출했다는 보도로 온통 뉴스를 도배했었다. 도망 다니다 숨어 살더라도 들어오는 곳이 집인데, 집에서 탈출이란 가당찮은 말에 적이 놀랐다. 못 견딜 만큼 힘들어 목숨을 건 행동이란다.

누구든지 사노라면 크든 작든 나름의 근심과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게 삶이다. 어른들이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힘없고 나약한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떠안게 했다. 이유야 어떻든 목숨을 건 탈출이라는 말을 듣고 보면 어떠한 것으로도 그 행위에 대한 정당성이나 당위성을 찾긴 글렀다.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특히 그렇다.

처지가 어렵고 힘겨워도 그것은, 상황에 따른 선택을 한 이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고, 감내할 일인 것이다. 부모들이 잘못 선택한 것에 따른 피해를 아무것도 모른 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 아이라는 약자들이 힘겨운 고통을 떠안게 하는 것은 파렴치다.

사소하고 하잘 것 없는 것을 갖거나 그것을 지키는 데도, 그에 따른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고, 노력과 책임이 요구 된다. 노력이나 희생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쯤은 우린 익히 알고 있다. 꽃으로 나서 참꽃을 도와 수정시킨 후 이울고 마는 헛꽃, 그래서 헛꽃이지만 그 역할을 인정받는 것이다.

희생에 따른 가치를 인정받을 때 그 결과는 더 값지다. 그 자체만으로도 고귀하고 숭고하여 높이 평가 되는 것이 희생이다. 불편하고 더러 손해 봐도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오늘 하잘 것 없다고 생각되던 그 헛꽃의 순정한 삶이 왜 이렇게 부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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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슨70 2020-07-01 18:44:40
<사노라면>테마에 걸맞는 순간 포착의 미학이 놀랍습니다. 어느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님의 미적호기심에 감탄합니다^^ 더불어 세상을 읽어내시는 노력도 잘보여주시네요. 잘읽었습니다 ●_^

발렌시아 2020-07-02 09:35:33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져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