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육아일기7> 제발 아빠 비웃지 않게 하옵시고~
 타잔
 2008-10-26 00:31:08  |   조회: 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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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한 저녁을 먹고나서 아내와 은아와 함께 동네 한바퀴 산책에 나섰다. 아기띠를 이용해서 은아를 가슴에 안고는 세상 구경 많이 하라고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게 했다. 은아는 문을 나설 때부터 "아푸부부~" 하며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고놈, 집에만 있다보니 외출하는 것을 눈치 채고는 무척이나 반가운가보다.

제법 걷고 나서 아내가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그러마, 하고 모 마트에 다다를 즈음 야외 테이블에서 한 아저씨가 왠 장총을 들고 무언가를 겨누고 있었다. 바로 옆엔 아들로 보이는 초등생 정도 꼬마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탁!" 생각보다는 작은 파열음이 들렸고, 뒤미처 "으하하하" 하고 꼬마가 세상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웃어제끼는 게 아닌가. 오판일지언정, 나의 뇌리 속의 판단 게이지는 분명 아이의 웃음의 성격이 비웃음에 가깝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상황은 40대 중반 정도의 이 남자가 옆 테이블에 빈캔을 놓고 사격일발을 가했으나 그만 빗나가서 아들에게 호된 조롱을 당하는 장면 정도였다.

아직도 깔깔 대며 제 아비를 마냥 골려주는 아이가 얄밉상스러웠다. 물론 당사자인 사내가 가만 있으니 뭐라 간섭할 바 아니지만 내심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하고 한심하단 생각마저 밀려들었다. 잠시 후 아내의 손짓에 나도 마트에 들어가 커피를 챙겨 나왔더니, 이번엔 아들 놈이 총을 들고 있었다. 캔이 하나 더 늘어 두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탁! 탁!" 잠시 시간을 두고 BB탄 두 발이 발사됐고 캔은 땡~땡그랑~ 둔탁한 소리를 내며 이내 바닥으로 추락했다. '고것~ 참!'

나는 기도했다. 제발 저 '못난' 아빠처럼 자식과 얽혀 애처로운 시험에 들지 않기를. 또 설령 피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할지라도 은아는 나를 저리 매몰차게 몰아붙여 무안주지 않는 착한 아이로 성장하길, 간절히 소망했다. 여태 은아는 해맑은 얼굴로 "아부푸푸~" 외계어를 연발하며 저 혼자 해방감을 만끽중이었다.

아빠라는 이유로 별 시덥잖고 떨떠름한 상념에 잠겨 본, 선선한 가을날 하고도 이슥한 밤이었다.
2008-10-26 00: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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