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걸어서 제주 속으로 5 - 제안로(소길리 입구~광령2리 입구)
 김승태
 2011-12-20 10:09:07  |   조회: 6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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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제주 전역에 호우 특보가 발효돼 장대비가 내렸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17일 오후부터 18일 낮까지 한라산 진달래밭에 342㎜를 비롯해 제주시 125㎜, 서귀포 181㎜, 한림 190㎜, 성산포 169㎜의 비가 쏟아졌는데 특히 한림 지역은 오전 6시 48분부터 7시 47분까지 시간당 84㎜의 기록적인 강수량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도로와 농경지 등에 침수 피해가 속출해 많은 불편을 겪기도 했다.

떠나간 가을 언저리에는 겨울이 찾아왔다. 노랗게 익은 감귤은 서서히 수확을 마쳐가고 여기저기 피어난 억새는 그 모습이 확연히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다. 제안로 걷기 제2일째인 11월 20일, 전형적인 제주의 초겨울 날씨를 보였다. 애월읍 소길리 입구에는 애월읍 상가리에서 금악리까지 8.5km 제안로 미개통 구간의 공사를 알리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출발지인 소길리 입구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했으며, 제주관광대 곁 하광로와 광상로가 만나는 기생고개까지 걷기를 마친 후 이 곳에서 제안로의 기종점인 제주시 노형동 288-1번지까지 미개통이라 그 대신에 중산간도로(1136번)변의 광령2리 입구까지 연계시켰다. 차량 이동 시간(소길리 입구~기생고개)을 포함해 2시간 42분이 소요되었다. 주거리 9.1km, 보조거리 1.0km 모두 10.1km였는데 그 여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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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길리 입구(08:27)~소길리/당산목(08:57)~유수암리 입구/협동교(09:11)~서선돌/충혼비(09:20)~유수암천(09:26)~서문(09:50)~범미왓(09:45)~살맞은돌 입구(09:56)~기생고개(허광로*광상로)/차량 이동(10:16)~광령2리사무소(10:532)~광령2리 입구/하광로*중산간도로(11:09)

---- 주요 역사의 현장

0 소길리 입구 : 제안로(금악~상가) 연결 공사는 2013년 4월까지 완공할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 중임

0 소길리 : 마을 옛 이름은 '쉐(소)+질(길)'이다. 설촌 연대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확실치 않으나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500년 전 지금의 속칭 좌랑못 부근과 신산머르 부근에 이미 산발적으로 거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귀량이터(歸梁伊基)가 있다. 그 후 분산적 주거 상태가 폐허가 되고 현 마을은 300여 년 전에 성씨, 송씨, 허씨와 그외 선조들이 입주하여 오늘이 살기 좋은 마을 형태를 이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세기 초반에 쉐질을 표준어 소길로 인식한 뒤 이를 좋은 뜻을 가진 한자 소길(召吉)로 표기하였다. - 마을홈페이지에서 옮김

0 당산목 :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팽나무를 마을 주민들은 송씨 할머니 변신으로 여기면서 본향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 나무를 당산목이라 부르고 있고, 보호수로 지정(1991. 01.)하였다. 이 일대를 당밧(당이 있는 밭)이라 하고 있음

0 유수암리 : 1271년(고려 원종 21년) 항몽삼별초군이 항파두성에 웅거할 때 함께 따라온 어느 한 고승이 유수암 절동산 아래 용출하는 맑은 샘을 발견하고 언덕 아래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 이름하고 불사를 시작한 것이 이 곳에 처음 인적이 닿은 시초이며, 또한 항파두성 함몰 직전 김통정 장군의 모친과 일부 수하들이 유수암 종신당으로 피신하여 토옥을 짓고 여생을 보낸 것이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때이며, 삼별초군을 토평한 원나라가 상동에 목자촌을 설립 금물덕리라 했으며 조선 초기 좌수 홍덕수의 설촌으로 정상적 제도를 갖춘 마을이 이루워졌다.
일제 시대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덕리로 변경해 불리다가 '옛 지명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1996년 1월부터 유수암리로 불리고 있다. - 마을 설촌 유래 참조

0 서선돌 : 마을을 수호하는 오방신장석의 하나로 오랜 세월 풍우를 이겨내고 웅장한 모습으로 마을 서쪽에 세워져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충혼비 좌대로 이용되기도 했었는데 2007년 봄에 옛 모습으로 재현시킴

0 유수암천 : 유수암리 마을 형성의 연원(淵源)이 된 이 샘은 극심한 가뭄에도 끊이지 않으며 여름에 차갑기가 빙수와 같고 겨울에 따스함이 온천을 방불하게 한다. 고려 중엽 항파두성에 삼별초군이 웅거할 즈음에도 이용했다고 하는 전해오고 있음

0 범미왓 : 4.3 당시 전소된 유수암리 동카름(범미왓)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 땅에 4.3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로운 마을로 재건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세운 표석

0 살맞은 돌 : 삼별초의 용사들이 궁술을 연마하기 위해 과녁으로 이용했던 것으로 '살 맞은 돌' 또는 '화살 맞은 돌'이라고 한다. 이 곳을 표적으로 삼아 활을 쏘았던 활터는 항파두성의 남문에서 약 1.0km 떨어진 극락오름에 있었다고 한다. 이 살 맞은 돌은 현무암으로써 7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옛날 화살이 꽂혔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으며 40여 년 전까지도 화살촉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 마을 홈페이지에서 옮김

0 제안로 기종점 : 제안로의 기종점은 제주시 노형동 288-1번지이나 현재는 하광로와 광상로가 만나는 <기생고개>에서 기종점까지는 미개통 상태임

0 광령2리 : 15세기 말엽 조선 성종 때 '서당골' 및 '산이골'에 살았던 유목민들이 훨씬 좋은 입지적 조건을 찾으면서 유신동(현 광령2리)으로 내려와 살기 시작한 것이 설촌의 시초라 전해지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광령리가 되었고, 1963년 12월에 광령1리, 광령2리, 광령3리로 나뉘었다. - 마을 홈페이지와 광령2리 설촌 유래 참조

0 광령2리 입구 : 하광로와 중산간도로가 만나는 곳임

제주도민들에게 다소 낯선 도로인 제안로(제주~안덕)를 이틀에 걸쳐 거닐었다. 이 도로는 제주 서부~남부 지역의 중산간 마을들을 연결하면서 지역 개발과 물류 운반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해 개설을 시작한 것 같다. 현재 일부 구간은 미개통된 상태라 소통이 원할하지 못하다보니 평화로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그 이용량은 현저히 떨어진 상태이다.

안덕~한경~한림~애월의 중산간 마을을 연결하는 제안로 일부 구간은 제주의 멋을 한껏 담아낸 고즈넉한 오솔길과 같았다. 그 길에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귤을 따던 어느 부부의 "귤 땅 먹엉 갑서!"란 한 마디 속에는 제주의 옛 정이 그대로 배어나는 것만 같았다. 가을에는,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라고 했던가? 떠나가는 가을, 그 언저리에서 늙어가는 마음을 잠깐이라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걷기……?
(2011. 11. 20.)
2011-12-20 1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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