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회 소식
<길 따라 오름 따라 038> 봄기운이 물씬 - 바우오름
 김승태
 2009-02-15 10:31:59  |   조회: 6161
첨부이미지
우수(雨水)를 전후하여 제주에는 완연한 봄기운이 배어나고 있다. 오름 등성이마다엔 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으며, 바우오름과 성산일출봉 입구의 유채꽃 향기는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요즘에 바우오름과 성산일출봉을 주변을 찾아 봄기운을 마음껏 만끽해봄은 어떨까? 바우오름(바우오름 바위오름 食山峰, 성산읍 오조리 313번지, 표고 60.2m, 비고 55m)은 일주도로(1132번)에서 성산고등학교로 연하는 길 옆에 위치하고 있다. 오름 기슭로 접어들어서는 농산물 저장 창고로 이용되는 공간이 있고 이를 조금 지나면 정상으로 가는 산책로(2007년 9월 개설)가 있어 정상까지는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오름에 유독 바위가 많으므로 인해 바우(바위의 제주어)오름으로 불려졌는데 이후에 ‘우’가 줄어 바오름, 또는 바위오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예전에 왜구의 침범이 빈번했을 때 오조리 해안을 지키던 조방장(助防將)의 지혜로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이 오름을 이엉으로 덮어 군량미를 쌓아 놓은 것처럼 위장하니 멀리서 이를 본 왜구들이 지레짐작하고 달아났다는 데서 연유하여 식산(食山)이라 명명되었다가 후에 봉(峰)을 덧붙였다고도 한다.

이 오름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이등변삼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바위가 많은 이 오름에도 정상에는 바위(장군석)와 상관없이 묘는 자리 잡고 있으며 중턱에는 당(堂)으로 이용되는 공간도 있다. 정상에는 사방의 조망을 위해 타이어매트를 깔아 놓았으며 간의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성산항과 연결되는 갑문이 설치되기 이전에는 이 일대가 오조리의 포구로서 또는 양어장으로서 그 이용도가 매우 높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양어장에서는 가끔씩 물 위를 뛰어오르는 숭어도 발견되고 사시사철 자라나는 파래는 어민들의 소득원이 되기도 한다. 오름 주위는 양어장을 끼고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일출봉의 웅자(雄姿)는 갑문 안쪽의 바닷물에 실제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투영되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 오름의 ‘황근(黃槿) 자생지 및 상록활엽수림’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47호로 지정(1995년 8월 26일)되어 보호되고 있다.

--- 바우오름에 얽힌 전설 :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우도와 오조마을 해안에는 왜구의 침입이 유독 잦았다고 한다. 왜구들은 시시때때로 마을을 침입해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던 어느 해 마을을 지키는 조방장이 새로 부임한다.
신임 조방장은 마을에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한 가지 전략을 세운다. 마을 앞에 있는 작은 봉을 왜구들에게 군량미로 쌓아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군량미가 산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면 많은 군사가 주둔한 것처럼 왜구들에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조방장은 즉시 관원과 마을사람들을 동원해 봉 전체를 마치 식량을 쌓아둔 것처럼 위장한다. 이 전략을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데 호시탐탐 오조마을 습격을 엿보던 왜구들은 마을 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군량미를 보고 자신들을 잡기위해 많은 군사가 주둔한 것으로 착각해 다시는 오조마을을 습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군량미가 산을 이룬 것처럼 보였던 봉을 가리켜 식산봉 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주도의 ‘제주의 전설’에서 가려 뽑음
2009-02-15 10:31:59
122.202.225.4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