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귤 나무 있는 집
 쿠스
 2023-01-06 02:56:58  |   조회: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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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나무 있는 집]

12월 제주는 노랗다. 노란 귤들이 각자의 모습을 자랑하며 일 년간 자신을 돌봐 준 사람들을 기다린다.

누군가의 마당에 열린 큰 귤, 밭에 있는 작은 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 사이 보이는 귤꽃(함부로 따서 나무에서 떨어지지 못 한 귤의 일부)이 보인다. 한숨이 나온다.

"제주에서 귤 왜 사냐? 그냥 따 먹으면 돼" 누군가 말한다. 귀를 의심했다. 그건 엄연한 서리.. 아니 도둑질이다.



[귤나무 있는 집 2]

인터넷에 "제주 귤 서리"를 검색하면 심심치 않게 서리했다는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장난스랍게, 죄의식없이, 당당하게. 자신들의 영웅담(?)을 올렸다.

우리집 마당에는 9그루의 귤나무가 있다. 여름에 꿀과 함께 갈아먹으면 극락인 아마나스, 겨울에 썰어먹기도 짜먹기도 하는 상큼한 오렌지. 제주 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최근 이 친구들이 고통받고 있다. 서리ㄲ.. 아니 도둑놈들 때문이다. 그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그들은 나무에 열린 친구들을 힘껏 뜯는다. 나무에는 노란 모습을 뽐낼 친구들 대신 나뭇잎만 자신의 푸름을 자랑하고 있다.
작년, 집 주변에 가게 하나가 생기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담 앞에서 도란도란 사진찍는 거야 뭐라 할 건 없지만.. 거의 매일. 못 보던 사람들이 가지를 꺽고, 귤을 따간다. 나 하나쯤이야. 뭐 몇 개도 아닌데. 저기 많이 열렸는데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일까?
동네 삼춘과 할머니들도 이야기하고 따가신다. 물론 그냥 드시는 분들도 있다. 상관없다. 알고 지내는 분들이기에.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르다. 그로 인해 나무는 상하고, 집에서의 휴식시간은 엉망이 된다. 가지를 꺽고, 함부로 귤 따는 소리, 담 넘는 소리에 매번 집밖으로 뛰어나가는 건 괴롭다. 하지 말라고 매번 말하기도 입아프다. 모른 척하며 차에 올라 가는 사람들을 보면 열이 오른다.

제주의 귤들에게는 엄연한 주인이 있다. 농약을 주고, 가치를 치고, 열매를 솎아주고, 주변 잡초를 제거해 주는 주인이. 서리는 장난이 아니다. 엄연한 범죄다.


[여담]

어느 날, 우리 귤밭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부모님은 도둑이 있어 달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해도 CCTV에 대한 생각도 없었는데.. 몇 십년이 지난 지금, 밭에 CCTV 설치는 필수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2023-01-06 02: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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