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조규훈 선생의 애향·애족 정신 본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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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동포사회와 제주 발전에 헌신했던 故 조규훈 선생(1906∼2000)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그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정부는 유족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대한민국 국민이 받을 수 있는 것으로는 최고의 훈장이다.

선생은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출신으로 1923년 일본으로 건너가 벌목사업과 고무공장 등을 경영, 자수성가 한 후 해방이 돼서도 일본에 남았다. 해방 직후 귀국하지 못한 600여 명의 재일동포를 돕고, ‘백두동지회’를 결성했다. 백두동지회는 머리가 백발이 되더라도 조국의 부흥을 위해 힘을 모으자는 뜻이다.

또 사재를 털어 재일동포 2세와 여성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설립, 민족교육의 본산으로 키웠다. 1949년 문부성의 허가를 받아 재단법인 ‘백두학원(白頭學院)’으로 개칭,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와 함께 선생은 1948년 주일 대표부 공관 건립비로 사재 1300만엔을 선뜻 내놓았고, 병원을 인수해 일본인 전쟁피해자 구호사업을 펴기도 했다. 1946년에는 고향인 조천중학교 건립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보냈고, 재일 민단 중앙본부 7∼8대 단장을 맡았다.

이렇게 재일동포 사회와 제주 발전에 혼신을 쏟았지만 정작 자신은 고향을 떠난 후 단 한번도 제주 땅을 밟지 못했다. 이같은 선생의 뜨거운 정성(精誠)은 세월에 씻겨 갈뻔 했다. 하지만 조천읍 출신 재일동포들이 ‘고 조규훈선생현창사업회’를 구성, 고인의 업적을 재조명했다. 조천중 졸업생들도 고인을 기리는 사업에 힘을 보탰다.

이제 재일제주인의 역사는 100년을 넘는다. 조국을 빼앗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학업, 취업, 이민 등 다양한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은 지난(至難)한 삶속에서도 제주발전을 위해 초석을 놓았다. 선생의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보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겐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비단 조규훈 선생만이 아니다. 고향인 제주발전에 헌신했던 재일동포들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보은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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