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사의 산 증인 양정규, 역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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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출신으로 40여년간 중앙정계를 누벼온 양정규 대한민국 헌정회장이 지난 12일 새벽 유명을 달리했다. 1967년 34세의 나이로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9대, 12대, 14대, 15대, 16대 6선의 국회의원을 지낸 고인은 제주도가 낳은 거물 정치인이었다.

 

고인은 오랜 정치경력의 소유자답게 마지막 가는 길에 많은 전.현직 정치인들이 찾아와 그를 ‘양 두목’으로 기억하며 그를 이제 볼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제주출신 정치인으로 국회의장감으로 가장 가까이 갔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장 출신이 헌정회장을 한다는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회원 직접선출에 의해 헌정회장이 되고 재선을 이룬 첫 인물이었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측근들에게 병상에서 일어나 헌정회관으로 돌아갈 것이라던 그는 가족들에게조차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이 세상과 작별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를 이렇게 키워준 고향으로 돌아와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됐다.

 

1933년 2월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 모두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머니품에서 동네에서 젖동냥을 받으며 자라야 했다. 부모형제 없이 할머니 밑에서 성장한 그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학교를 나온 후 해방이 되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전쟁이 터지자 자원입대했다. 군에서 장교로 전환한 그에게 1961년 5.16정변이 그의 운명을 가른 중요한 정치적 전환점이 됐다.

 

당시 소령이던 그는 박정희 소장의 5.16정변에 대항해 서울로 군을 움직이려던 후방에 있던 군의 움직을 포착해 이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중령으로 예편한 그는 정일권 국무총리의 정보비서관으로 발탁됐고 1967년 제7대 총선에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게 등장한 그의 정치역정은 5전 6기의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국회의원 공천을 받지 못한 적도 있고 공천을 받았으나 총선에서 낙선한 것이 5번이었고 신군부 시절에는 4년간 정치규제에 묶여 11대 때는 출마자체가 봉쇄된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줄곧 집권 여당편에 있으면서도 무소속으로 세 번이나 당선된 진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고인은 2000년 16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김윤환 이기택 박찬종 신상우 등 거물급 정치인들을 대거 낙천시키며 정풍운동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이로 인해 현재의 한나라당 쇄신파 중진들은 거의 모두가 그에 의해 발탁된 인물들이다. 이때부터 고인은 한나라당 정치인들로부터 ‘양두목’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는 또 2002년 대선패배 직후 고향인 조천읍 함덕에서 한나라당 중진들을 모아 함덕회를 조직해 결속을 다진 일화는 유명하다.

 

하순봉, 정창화, 윤영탁, 최돈웅, 김기배, 김종하, 목요상, 신경식, 유흥수, 이해구, 조진형, 주진우, 정문화 의원 등이다. 이들은 매일 같이 고인의 빈소를 지키며 마지막 가는 길에 끈끈한 정을 나누고 있다.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했던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는 그의 빈소를 찾아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그는 또 17대 총선직전 60여명의 중진들을 모아놓고 가장 먼저 불출마 선언을 하며 중진들의 연쇄 불출마 운동을 일으키며 박근혜 대표중심의 한나라당의 쇄신의 솔선수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다선 의원으로 국회의장에 도전할 수도 있었지만 주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때문인지 김수한 전 국회의장도 헌정회장에 도전하려다 그가 출마한다는 소식에 의지를 꺽었다고 한다.

 

한나라당내부에서도 그를 구시대 인물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나 당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시기에 있어 그의 선택은 항상 자신을 버리는 쇄신 카드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현역으로 가장 오래 정치를 했으나 항상 먼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인 정치인이었다.

 

“40여년간 이어온 정치인생의 원동력은 제주도민들이었고 제주도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강영진 정치부장>yjka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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