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院 ‘아이고, 아이고’
中文院 ‘아이고, 아이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서울의 ‘이태원’처럼 ‘원(院)’이란 지명은 여행자들의 숙박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사리원, 조치원 등의 원도 마찬가지다.

여행자가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숙박 휴게소를 조선 전기에는 ‘원’이라 불렀다.

‘신동국여지승람’(1530년)에 보면 원은 당시 조선 전국에 걸쳐 거미줄처럼 산재해 있었다.

‘역(驛)’이 국가의 명령이나 공문서 전달을 위한 교통통신 기관이었다면, 원은 그들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국립여관이었다.

국립여관이었지만 때때로 민간인에게도 숙식을 제공했다.

▲원은 국가에서 운영했기 때문에 재원도 정부에서 마련했는데, 원이 소재한 곳마다 ‘원위전(院位田)’이란 땅을 주어 운영경비를 마련토록 했다.

이 원은 대부분 지방의 향리(鄕吏) 층에서 운영했는데 그 우두머리를 ‘원주(院主)’라 했다.

원을 운영하는 대신, 각종 잡역에서 제외하는 일정한 권한도 부여해서 어떤 원주는 상당한 권세를 등에 업고 지방사회에 위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큰 원의 경우, 대부분 주민 4~5 가구를 휘하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서귀포시 중문은 원래 상문(上文) 중문(中文) 하문(下文)으로 나뉘었었는데 그 중 중문에는 ‘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마을을 ‘중문원(中文院)’으로 불렸었다.

이 중문원은 조선 후기로 오면서 ‘점사(店舍)’라는 민간 여관들이 생겨나면서 사라졌다.

조선시대 전국에 주요 간선도로가 모두 10개 였다.

그 중 제주도로 오는 길이 ‘7로(七路)’다.

서울을 출발하여 동작나루를 건너 과천~천안~공주~여산~삼례역~태인~정읍~장성~나주~영암~해남을 거쳐 수로로 제주에 도착하는 길이다.

이 ‘7로’의 마지막 ‘원’이 바로 중문원이었다.

▲‘원’의 역사를 생각하면 중문에 ‘관광단지’가 생겨나고 관광숙박 휴게시설이 들어선 것이 우연이 아닌 듯하다.

지난 31일 이 중문에 있는 롯데호텔에서 열린 21세기 경영인클럽 포럼에 참가한 YS, 김영삼 전대통령이 아들 김현철의 X파일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덥다’고 선문답, 딴 청을 부렸다고 한다.

그런 그가 행정구조개편 주민투표와 관련해서는 ‘잘한 일’이라 했다는데, 말 그대로 받아들여야할지 알쏭달쏭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