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인가? 거짓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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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신은 영국 에버딘 왕립의료진료소가 ‘뇌를 속여 살을 빼는’ 의료장치를 개발했다고 전했다.

성냥갑만한 전기 자극기를 위벽에 넣은 뒤 공복상태에서도 ‘배 부르다’는 신호를 뇌로 보내는 방식이다.

일종의 ‘속임수’요법이지만 그 발상이 기발함을 넘는다.

그냥 소화제에 불과한데도 “효능이 있다”는 의사의 말에 반응하는 플라세보 효과나 난치환자에게 “좋아졌다”는 말을 반복해 상태를 호전시키는 피그말리온 효과 등도 좋은 예다.

당분인 것처럼 위장해 충치균을 굶겨죽이는 자일리톨의 요법이나 어린이에게 주사를 놓으며 “하나도 안 아프다”는 말로 공포를 제거하는 것도 수법에서는 비슷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경우, 때때로 쓸 수 있는 선의의 거짓말인 것이다.

온 나라가 휴대전화 불법도청 파문으로 들끓고 있다.

지난 5일 국정원의 X파일 사건 발표는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다.

문민정부 시절에 이어 국민의 정부에서까지 휴대전화를 몰래 엿들었다는 것이 국정원의 진상조사 결과 모두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당시 대통령은 물론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한 정권 핵심인사들이 한결같이 “도청은 없다”고 주장해온 것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점이다.

“한 적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 “도청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을 걸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휴대전화 감청기기를 단 한 대도 갖고 있지 않다” 등등….

더 큰 문제는 국정원이 2002년 3월 이후에는 도청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가 몇이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구차한 변명에 염증을 느끼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 국민이 많을 수록 우리사회는 그 만큼 상심의 늪에 빠져 들어간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사생활이 노출됐을 가능성에 불쾌감의 수준을 넘어 분노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시민들은 재발 방지의 근본대책을 마련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 것을 촉구하면서 관련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거적때기를 들출 때마다 얼마만한 구더기가 나올지는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우리 교육은 지금도 학생들에게 조지 워싱턴이 자기 잘못을 고백한 것을 예로 들면서 거짓말 않는 솔직함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청렴결백을 신조로 삼아야할 정치권은 여기저기서 거짓표현을 일삼는다.

거대한 의혹사건이 터질 때마다 모두들 하나같이 “나와는 상관없는 음모다”, “나라를 위해 한 일이다”, “돈이 오간 비리사건이 아니잖느냐”는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럴싸한 말들….

요즘 시한부 파업을 강행한 조종사들은 평균 연봉 1억원 이상에 많은 특혜까지 누리는 ‘노동귀족’이다.

그런데도 “아직 배고프다”며 머리띠를 두르고 나서니 ‘배부른 투쟁’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구성원 간 솔직함이 전제돼야만 신뢰감도 충만할 것이다.

성철스님이 오랜 제자 원택에게 남긴 글귀가 ‘불기자심(不欺自心)’이다.

생전에 투박한 산청 사투리로 “(자신을)쏙이지 말그레이”라고 했다는 그 가르침이다.

과연 자신을 속이지 않았는지, 그에 앞서 남을 속이고 있지 않는지를 반추해 봐야 할 사람들이 요즘 어디 한 둘이겠는가.

더 이상 국민들의 기억력을 시험하려 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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