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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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서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우리의 옛날이야기 주인공 심청도 태어나서 일주일 만엔가 어머니를 잃었지만 동네 아기 엄마들이 젖을 나눠줘서 살아난다.

연약한 어린 생명이 위태위태한 이 세상에 발붙이기 위해서는 부모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이 필수적이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삶이 점점 복잡해지는 현실에서도 이러한 공동체의 관심은 아이들의 성장에 필수적이며 근본을 이룬다. 의무교육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고, 또 중학교까지 확대 실시하게 된 것도 근본 취지는 아이들을 더 잘 길러보자는 목적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 학교 가기가 싫고 그만 두고 싶어 하는 이이들이 늘고 있으며, 이런 욕구를 무시한 채 부모가 억지로 학교로 밀어 넣다가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일으키는 아이들이 허다하다. 아이 입장에서 검토해 보면 학교가 험한 세상일 수도 있다. 시험 치르는 날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배 아프고 토하고 열나고 기침하다가 헛구역질에 밥도 못 먹고 얼굴이 파래지는데 부모는 죽어도 학교 가서 죽으라는 뜻인지 등 떠밀어 내보낸다. 수강해야 하는 과목들은 수도 많은데 저마다 어렵다. 실기다 이론이다 평가가 이어지고, 내신 성적에 따라 진학이 판가름 난다고 전체 학생들을 경쟁대상으로 삼으라하니 피를 말리는 일이다. 이런 환경에서 정상적인 아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것이 당연하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힘을 다해서 날이면 날마다 하라고 강요받으면 건강하게 살 사람이 있겠는가. 시험이 주는 부담감과 점수걱정이 겹쳐 병이 나는 예민한 아이들을 도대체 어찌하면 되나 조언을 구하면, 한약을 먹여봐라, 정신신경과 의사의 상담을 받게 해봐라, 대안학교나 해외 유학을 고려해 봐라 등의 처방이 나온다. 그 어느 것도 적절하거나 흡족한 해결책은 될 수가 없다. 멀쩡한 아이를 병자가 되도록 하는 교육환경이 문제라 해도, 제 나라 땅에서 모국어로 충족된 삶을 살기를 포기하고 다른 나라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정상이라면 내 나라를 살기 좋게 만들어 내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 개개인의 능력과 취향, 타고난 성품을 잘 살펴 북돋울 것과 더 키울 것을 찾아내어 왜곡되지 않은 삶을 살도록 기초를 확립해 주는 것이 교육의 근본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시험 보는 훈련을 하고, 점수가 높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강박증을 갖게 하며. 악바리가 되라고 밀어대면 아이의 호기심이나 행동 방식, 취향의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여지가 없어진다. 점수만을 판단 근거로 삼으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아무 능력 없는 사람으로 입증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일찌감치 아이들을 망치는 지름길로 교육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육은 부모 개인적인 책임이나 일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 차원으로 연결된 일이기 때문에 부모가 발버둥을 쳐도 대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선택의 여지없이 부과되는 과다한 교과과정, 한정된 시간에 진도 나가느라 아이들이 소화해 내는지 돌볼 틈도 없이 달려야 하는 교사, 이런 교실 사정은 바뀌어야 마땅하다. 필수과목을 줄이고 학생들이 흥미 있는 과목을 선택해서 찬찬히 선생님과 함께 그 기초를 다지면서 여유 있게 응용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이 진학할 다양한 고등학교와 교육프로그램을 갖춰 다채로운 개성과 능력을 수용하여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라 하는데 우리는 왜 가장 소중한 아이들에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꿈꾸며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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