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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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물질하는 여성을 ‘잠녀(潛女)’ ‘잠수(潛嫂)’‘해녀(海女)’라고 부른다. 제주 바닷가 마을에선 ‘좀녀’ ‘좀녜’ ‘좀수’라고 쓴다. 국어사전에는 ‘해녀’를 이르기를 ‘바다 속에 들어가 해삼 전복 미역 따위를 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로 정의했다. ‘잠녀’를 동의어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일찍이 행정기관이나 학자들도 정립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해녀’라는 이름이 일본인들에 의해 생긴 용어라는 주장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좀녀’ ‘잠수’를 써야한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해녀’라는 용어가 우리사회에서 토착화해간다는 점에선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의견도 있다.

▲문헌기록에서 ‘잠녀’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이건(李健.1614~1662)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서다. 즉, 이 문헌에선 ‘채곽지녀위지잠녀(採藿之女謂之潛女)’, 즉 ‘미역을 채취하는 여자를 잠녀’라고 기록했다. 김춘택(金春澤.)의 ‘북헌선생문집(北軒先生文集)’권 13 ‘잠녀설(潛女說)’에 나오는 ‘잠녀’의 기록은 더 구체적이다.

즉, ‘잠녀자업잠수채곽혹채복(潛女者業潛水採藿或採鰒)’이라고 해서 ‘잠녀는 물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 미역을 캐고 전복을 따는 업을 하는 자’로 써놓았다. 그런데 옛 문헌에 ‘해녀’라는 용어도 보인다.

1791년 전남 완도군 평일도을 찾은 위백규(魏伯珪7.1727~1798)의 ‘존재전서’중 ‘금당도선유기’에서다. “....順風流到平伊島統浦觀海女 採鰒 其裸身佩瓢到入深淵...(순풍이 불자 배를 띄워 평이도에 이르렀다. 온 포구에서 해녀들이 전복 따는 것을 구경했다. 이들은 벌거벗은 몸을 박 하나에 의지하고 깊은 물속을(자맥질했다)...“즉, ‘해녀’라는 용어를 처음 쓴 것이다.

▲최근 문화관광부 광복 60주년 기념문화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황병기.이하 기념위)가 ‘일제문화잔재 바로알고 바로잡기’ 시민제안 공모의 으뜸상으로 전남 나주시를 흐르는 ‘영산강’을 선정했다가 1주일만에 취소했다. 기념위는 이 강의 이름이 조선을 식량기지로 수탈했던 일제가 남긴 흔적이어서 선정했지만, 나주시민들과 사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제안의 오류, 고증의 미비’ 등을 이유로 선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기념위의 사업 취지는 옳았다고 하지만, ’일제잔재청산’이라는 이벤트성 사업보다는 사실(史實)에 바탕한 신중한 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한 예이다. 용어 정립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해녀’ 역시 이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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