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해도 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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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 TV 방송국의 월화드라마 ‘야인시대’가 대단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시내버스를 타고 보니 라디오 방송에서 드라마 속의 김두환과 실제 인물 김두환을 검증한다는 프로에 승객들 모두가 숨죽이며 귀 기울이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며칠 전 어느 신문을 보니 요즘 초.중.고 남학생들은 드라마 ‘야인시대’를, 학생들은 ‘인어아가씨’를 알지 못하면 왕따를 당한다는 글을 읽으며 내 처지가 생각나 실없이 웃은 적이 있다.

나 또한 월요일, 화요일 저녁이면 일손을 털고 TV 앞에 턱받치고 앉아 전개되는 장면에 나이답지 않게 때로는 흥분하고 때로는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여 식구들에게 은근히 부끄럽기조차 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요즘 극중 주인공들이 입는 검정 바바리 코트에 검은색 중절모자가 여성들에게까지 유행이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드라마가 이다지도 인기가 높은 것일까? 그 원인을 한두 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분명한 한 가지는 현재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에 대한 답답한 실망감을 건달세계의 신의를 통하여 통쾌하게 대리만족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주인공의 그 당당함과 정의로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아랫사람들을 아끼는 마음. 위민정신. 능력과 힘이 있으나 교만하지 않고 예의 바르며, 자신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그의 언행에서 한낱 건달 조직의 두목이 아니라 차라리 군자다움에 신의와 존경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 그런 군자답고 믿음직한 지도자가 나와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국민들의 무의식 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이기도 하다. 군자란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행동을 근신하며, 다른 사람과 다투기를 싫어하여 문사(文士)의 붓끝을 피하고, 무사(武士)의 칼끝을 피하며, 변사(辯士)의 혀끝을 피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게 또한 군자의 길이기도 하다.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군자유어의 소인유어이(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 했다.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배들은 이해에 밝다는 뜻이다.

즉 군자와 소인배의 차이는 목숨을 거는 일이 정의 때문이냐, 이해 때문이냐에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이 군자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은 소인배라는 뜻이다.

또한 ‘군자구제기 소인구제인(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이라 했다. 군자는 자기로부터 얻으려 하지만 소인배들은 남으로부터 얻으려 한다는 뜻이다. 즉 군자는 뜻대로 안 되는 일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하지만 소인배들은 자기 실력과 노력보다는 남의 도움으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간교한 술책과 아첨 그리고 원망과 조바심을 갖고 살게 된다는 뜻이다.

요즘 같은 지식정보화 시대. 세계화 시대에 무슨 고리타분한 말을 지껄이고 있느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했다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야비하지 않게, 묵묵히 군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이 영원불변의 진리 앞에서는 나이도, 직업도, 신분도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상만사가 사람이 하는 일이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각계 각층에서 권력과 금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소인배의 길을 버리고 군자의 의연한 길을 택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돌아오는 월요일 저녁 드라마의 멋진 장면을 미리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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