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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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미술전시회에 갔었다. 부실한 작품 투성이였다. 도자기의 뚜껑과 몸체를 연결하는 선이 들쭉날쭉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도자기가 눈대중으로 보기에도 완벽한 원형이 아니고 흰색도 완전한 흰색이 아니고 검은 색도 완전한 검은 색이 아니었다.

모형작품은 설계도면 보다 더 입체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육면체 사물함은 구석처리가 부실한 것이 완연하고, 타일은 모서리가 완전한 90도인 사각형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완성도가 없는 작품들이 멋들어진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작가들마저도 일상복에 삼삼오오 구석에 앉아서 재잘대는 모습이란... 전시회가 아니라 학예회였다.

장인이 조그만 띠끌 하나 때문에 일반인이 보기에는 잘 만들어진 도자기를 깨버리듯이 80%의 완성도는 0%의 작품가치이다. 굳이 예술작품이 아닌 공산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흠이 있는 도자기나 버버리 같은 의류는 95%이상의 완성도임에도 'Second'라고 부르며 절반이하의 가격밖에 받지 못한다. 일반인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흠을 발견할 수 없는 그런 사소한 흠을 말한다.

80%의 완성도를 90%의 완성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10%만 추가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깨어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 또 이런 과정을 수 없이 겪어야만 작품의 구상단계에서부터 신중을 기하게 된다. 그래도 지금까지 들인 공과 재료비가 얼만데 하는 생각이 들면, 예술가가 아니라 장사꾼이다. 그것도 천박한 장사꾼이다.

나는 관공서에서 근무하면서 불필요한 보고자료를 만들어내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보고서를 발간할 때, 내 직업이 ‘이면지 생산업’이 아닐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조직의 일정에 쫓겨서, 내가 보기에도 부실한 작품들이 밀려나갈 때마다 인간적인 좌절을 경험하였고 다른 직장을 모색하게 되었다.

100%의 완성도는 무한의 영역이다. 누구도 100%의 완성도를 감히 말할 수 없다. 또 누구도 감히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자기가 보기에는 완성도 있는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아야 하는데 자기가 보기에도 그 이하의 작품을 내어놓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것을 ‘학예회’라고 부른다. 어린 학생들의 작품이니 봐주어야 한다는 정도로, 우수성보다는 성취도를 본다는 명분으로, 또 작품의 우수성을 떠나서 귀엽다는 차원에서, 어쨌든(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그간의 노력을 보아서, 만들어 놓은 것이니 버리기는 아깝다는 차원에서 내놓는 작품들을 언제까지 봐주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든 것이 열악한 제주에 사니까 이 정도 하는 것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언제까지 자위해야 할까?

작품이 부실한 것은 사람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능력이 부족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하나이고 안목이 치졸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는 것이 둘이고 뻔뻔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내놓는 것이 셋이다.

분명히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 보고서, 발간물이 일정에 쫓겨서,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다음엔 더 잘하자고 하면서 발표되는 것을 너무도 빈번히 접하면서 나는 좌절한다. 남의 일임에도 좌절한다.

관공서의 보고서도 그렇고, 국제자유도시 추진계획도 그렇고, 관광상품도 그렇고, 전시회도 그렇고, 음악회도 그렇다. 객석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어린 아이를 대동한 청중도 입장을 시키고, 연주중에 소리소리 지르며 객석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도 그렇고, 없는 물건을 구해달라고 하면 짜증스러운 표정의 상인들도 그렇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너절한 작품들이 즐비하다. 문화는 사람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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