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병선 박사
故 박병선 박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찍은 성경을 ‘42행 성경’이라고 부른다.

 

총 180부 가운데 30부는 양가죽으로, 나머지는 종이로 제작했다고 한다.

 

이 중 48부가 남아 있지만 상태가 좋은 건 20여 부다.

 

디자인이 뛰어난 걸작이란 점과 ‘세계 최초’라는 상징성 때문에 고서 수집가들이 가장 탐내는 대상 중 하나다.

 

간혹 경매에 나오면 수백만달러씩에 팔리곤 한다.

 

이런 구텐베르크 성경으로부터 세계 최초라는 지위를 빼앗아온 게 ‘직지심체요절’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동양문헌실에 묻혀 있던 것을 찾아낸 것이다.

 

▲ 지난달 30일 재불사학자 박병선 박사의 유해가 고국의 품에 안겼다.

 

영면 후 화장해 노르망디 해변에 뿌려지면 바닷물에 실려 고국으로 오고 싶다던 그다.

 

박병선 박사는 해외에서 선구자적 자세로 나라 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준 학자로 기억된다.

 

1955년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난 그는 한국전쟁 후 유학비자를 받은 최초의 여성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소르본대에서 역사학박사,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종교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찾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직지심경과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낸 일이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사서로 들어간 그는 1967년 직지심경을 먼지 구덩이에서 찾아냈고, 치밀한 고증 끝에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선 금속활자본임을 밝혀냈다.

 

오늘날 세계 인쇄사에서 한국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직지 대모(代母)’로 불리는 이유다.

 

▲ 박병선 박사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송돼 국가사회공헌자 권역에 안치됐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특별한 애국심을 기리며 정신적 유산을 계승해 나가는 것이다.

 

비록 프랑스 국적이긴 해도 고국을 위해 어느 외교관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에 그렇다.

 

그리고 노구에도 젊은이 못지 않았던 그의 향학열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외규장각 도서가 한국에 영원히 남도록 노력해 달라. ‘대여’라는 말이 사라질 때까지 모두 합심하라”는 고인의 당부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박사님 이제 설움, 미련 등 모든 끈을 놓고 편히 쉬십시오.
함성중 편집부국장hamsj@jejunews.com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