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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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는 삼겹살이 딱이다. 고지방 음식궁합이란 지적이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국민 회식 선호도 1위다. 특히 비 오거나 추운 날, 그 유혹이 강하다. 그런데 불판에 노릇노릇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앞에 두고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비계 껍질에 새겨진 품질 등급을 매긴 도장 때문이다. 그 선명한 분홍빛 잉크는 혹시 몸에 안 좋은 건 아닐까.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원샷 구호에 공연한 걱정이 된다.

돼지·소고기의 품질은 이 등급이 말해준다. 누구라도 1등급 고기를 선호할 것이다.

▲대학 입시철이다. 이 즈음 수험생들은 수능 성적표에 새겨진 등급에 희비가 엇갈린다. 올 수능의 경우, 외국어는 단 1문제만 틀려도 1등급을 못 얻게 돼 ‘물수능’ 논란을 야기했다. 정시에선 영역별 등급이 큰 의미가 없고, 표준점수나 백분위가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수험생들은 그 등급을 위해 365일 별을 보며 등·하교를 반복했다. 단순 숫자에 익숙한 부모들은 등급을 얘기하며 성패를 단정한다.

▲등급으로 통하는 세상이다. 1·2·3·4, A·B·C·D 등급에 너나없이 매몰돼 있다. 또 개인이나 기업의 경제적 평가는 신용등급이다. 범위를 넓히면 국가 신용등급이 있다. 최근 유럽에서 신용등급 강등 소리가 들리면서 글로벌 경제가 움츠러들었다.

품질 일등을 추구하고 실력·신용등급을 올리려는 노력은 불가피하고 절박하다. 최고와 일등만이 살아남는 시장경제의 논리와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이다. 사람조차도 등급을 매기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 기관이 조사한 1등 신랑·신부 조건을 본 적이 있다. 신랑의 경우, ‘키 177㎝, 연봉 4348만원, 자산 1억9193만원’이다. 등급 평가의 잣대는 학력, 연봉, 재산, 직업 등이다.

하지만 사람을 품질이나 식육의 단위처럼 등급으로 구분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람의 외형은 숫자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인격이나 삶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똑같이 일하고, 가정을 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등급으로 정하겠는가. “행복은 등급 순이 아니잖아요.”



오택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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