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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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아주 의미있고 뜻깊은 행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이 빼돌려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했다가 100년만에 귀환한 '북관대첩비'가 고국으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 행사가 그것이다.

100년 동안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됐다가 고국으로 돌아왔음을 하늘도 알았음인지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하는 행사에는 비교적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날 열린 고유제는 문화재청과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단이 주최하고 한국민속학회가 주관했으며 이애주 서울대 교수의 태평무 공연이 곁들여졌다.

고유제를 마친 북관대첩비는 새용산박물관이 개관하는 오는 28일 오후 2시 '역사의 길'로 명명된 공간에서 일반에게 전시될 예정이다.

북관대첩비는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이 되는 날인 다음달 17일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잃어버린 모자와 신발'을 얹어 다시 일반 전시에 들어가고 북한당국과 협상을 거쳐 적절한 시기에 비석이 있었던 북한으로 반환된다고 한다.

◇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반역자를 응징하고 왜군을 상대로 크고 작은 전공을 거둔 정문부 장군을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의 활약상을 기록한 비석이다. 조선 숙종 34년인 1707년 함경도 북평사로 부임한 최창대가 함경북도 길주군에 세운 이 비석은 높이가 187센티미터, 너비 66센티미터, 두께가 13센티미터이며 여기에 새겨진 1500자 분량의 비문에는 창의토왜(倡義討倭)를 외치며 왜적을 물리친 정문부 장군의 활약상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비문에는 선조의 두 아들 임해군과 순화군을 왜군에 넘긴 반역자를 처단하고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 의병 3000명을 이끌고

가토 기요마사의 왜군 2만명을 무찌르는 등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는 데 '북관대첩'은 함경도 의병들의 쾌거를 말하는 것이다.

◇ 국보급 문화재인 북관대첩비는 1905년 러.일전쟁 때 함경도 지역으로 진출한 일본군 제2에비사단 여단장 이케다 마시스케 소장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옮겨졌다고한다. 무엇을 숨기려고 했는 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부끄러움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북관대첩비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의 유물과 유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 옆 숲의 한 귀퉁이에 방치돼 있다가 1978년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이후 민간차원에서 반환운동이 끊임없이 벌어진 결과 마침내는 이국땅에 방치돼 있던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참으로 반갑고 기쁜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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