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독거 노인과 오정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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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초, 한 방송국은 노인 복지에도 도농간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일례로 일손이 크게 모자라 시골의 독거 노인들에게는 도시락이 1주일에 한번밖에 배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도시락을 받아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맙다"며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마음을 무겁게 한다.

10월 19일에는 두 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군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 중 한 명은 필자가 일하는 평화네트워크 활동가 출신인 오정록씨이고, 다른 한 명은 가톨릭 신자로는 처음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고동주씨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인지, 대부분의 언론은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을 찾은 필자는 오정록씨가 시골 독거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총을 드는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고동주씨가 빈곤의 나락에서 미래를 잃어가고 있는 어린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감옥에 갇혀 참회(?)할 줄 모르는 1천명이 넘는 병역거부자들이 우리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모든 생각들은 "안보를 무시한 철없는 발상"에 불과한 것인가?


언제까지 시기상조인가?

이미 많은 사람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검토하고 있다", "시기상조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성의 있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이에 지난 50년간 약 1만명이 감옥 생활을 해야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1천명이 넘는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어 있다.

병역거부자들을 병역법에 따라 처벌해온 목적은 병역거부라는 '범죄'(?)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는데 있다. 그러나 병역거부자의 수는 오히려 증가되어 왔다. 신체의 자유는 구속할 수 있어도 양심의 자유까지 가둘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처벌'이 아닌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대법원은 작년 8월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소수 의견으로 대체복무제 도입 필요성을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작년 9월 대체복무제 도입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대체복무제 도입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국방개혁 2020'을 발표하면서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가 병역기피로 악용되고 군복무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대만 등 이미 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이는 지나친 기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군복무보다 긴 시간동안 각종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울러 군복무자의 박탈감은 병영생활 개선 조치를 통해 풀어야 할 문제이지, 소수자의 인권과 양심을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체복무제 도입 서둘러야

대체복무제 도입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설사 다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소수의 양심과 신념을 존중하는 것부터 체득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억압하고 부정하는 모순은 이제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대체복무제는 연 1천명에 달하는 수감자들에게 고아원, 양로원, 장애우 시설 등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수감 비용을 절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큰 예산 부담 없이 사회복지 수준을 증진시킬 수 있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인 것이다. 대만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는 이 제도를 한국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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