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말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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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張騫. BC ?~114)은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월지와 손잡고 흉노를 치기 위해 기원전 139년 파견한 특사였다.

기원전 139년 장안을 떠난 그는 도중에 흉노의 포로가 됐다.

10년의 억류생활 끝에 겨우 도망쳐 월지에 도착했으나 협공 설득에는 실패하고 13년 만에 구사일생으로 귀국했다.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는 이 일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사명이었던 월지의 요령은 끝내 얻지 못한 채(要領不得) 귀국길에 올랐다”

▲지금도 흔히 쓰는 ‘요령부득’이란 한자숙어는 이런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비록 ‘요령부득’이라는 사기의 평가는 받았어도 그는 미지의 세계였던 서역(중앙아시아 지역)을 처음 중국에 알리는 개척자 역할을 해냈다.

그의 기마대가 서역 각국에 도착하자 동서의 길이 트였다.

서역을 통해 명마(名馬) 보석 포도 수박 등이 수입되고 중국에서는 비단 금 등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동서 문화의 길이 트이게 되는 것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교통수단이기도 했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말고기도 즐겨 먹었다.

말고기가 금지된 것은 말이 중요한 전략물자로 인식되면서부터다.

중세 초기엔 교황의 칙령으로 말고기 식용이 금지됐다.

아시아에서도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전략물자를 먹는 것은 혐오스러운 일로 치부됐다.

유럽에서 말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제주도는 징기스칸이 세운 몽골제국이 말을 키우기 위한 직할지로 삼으면서 명마 생산지로 세계에 알려졌다.

▲조선시대엔 식용으로 포를 떠서 말린 고기를 궁중에 진상했다.

제주도 말고기가 워낙 유명해 중국에 까지 알려졌다.

그러나 워낙 말고기 수요가 많다보니 세종임금은 제주도산 말고기를 중국사신을 접대할 때를 제외하고는 사용을 금지했다.

그런 제주 말고기가 요즘 일본은 물론 유럽까지 널리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관광안내 책에도 말고기가 빠지지 않고 있다.

제주가 다시 말의 고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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