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노인이 처한 심리상태는 ‘문화지체’로 설명이 가능하다. 문화지체는 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이 ‘사회변동론’에서 주창한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현대의 도시문명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 속도를 사람의 행동양식 등이 따라가지 못할 때 문화지체현상이 나타난다. 장기수 노인도 개인적인 문화지체로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고, 적응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에겐 교도소 담장 밖이 진짜 감옥이었던 것이다.
문화지체 현상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목격된다. 우리의 정치문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치개혁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치는 매우 높아졌지만 정치권의 힘겨루기, 줄서기, 당리당략 등은 많은 정치인이 바뀌어도 여전하다. 유권자도 올바른 선택엔 공감하지만 투표장에선 슬그머니 개인적 친분부터 따진다. 시대에 뒤떨어진 ‘선거 및 정치문화’가 정치개혁이라는 화두를 던진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 결과다.
문화지체 현상을 가속화하는 엔진은 정보화다. 다양한 정보로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지만 문화는 이러한 현실을 제때에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보화의 역기능의 첫째로 문화지체를 꼽는다.
문화지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여부가 기업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잭 웰치의 GE는 인터넷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공룡기업이었으나 웰치의 리더십으로 e-비지니스에 크게 성공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룰 당시 우리나라도 ‘잘 살아보자’는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침체된 당시 사회분위기를 뛰어 넘을 수 있었다.
요즘 이해찬 총리와 뉴라이트 진영이 서로를 ‘문화지체’ ‘정신지체’로 몰아세우며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저마다 문화지체를 극복하려는 노력일 수 있다. 그러나 상대를 향한 날이 너무나 시퍼래 왠지 가슴을 졸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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