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문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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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갈 데 없이 이재민 수용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한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소식이다. 재난이 닥친 뒤 배턴 루지 뿐 아니라 인근 휴스턴, 애틀랜타 등지의 교민회와 종교시설 등이 이재민들에게 집을 개방하였고 뉴올리언스 교민들을 돕기 위한 모금도 발빠르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3천여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지역의 한인들은 한인교회와 동포들의 집에 나뉘어 숙식을 해결하였다. 심지어 한꺼번에 밀려든 취재진과 정부 관계자들도 배턴 루지 교민들의 신세를 졌다고 한다. 한 미국인은 "다른 어떤 나라도 그런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집을 떠나면 호텔이나 대피시설로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교포는 "코리안은 어려움이 있으면 유난히 서로를 돌보는 것 같다"며 자랑스러워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인류에게 음식이 풍족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류는 수십만 년동안 음식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물론 모든 인류라고는 할 수 없다. 아직도 기근의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고 또 석기시대를 살아가는 인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인류에게 음식이 풍족해진 것은 불과 20년이 안된다. 과거에는 적게 먹고도 영양 흡수를 잘하는 사람이 생존에 적합한 품종(!)이었으나 이제 먹은 것을 지방으로 잘 축적하면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수명을 단축하는 시대가 되었다. 환경이 달라졌다. 우리에겐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음식의 풍요라는 도전이 기다리게 된 것이다. 즉 영양흡수를 잘하고 비축을 잘하는 체질이 지금의 환경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인류는 환경의 도전과 이에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생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과거에 경험을 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풍요에 적응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인류는 대부분 가난해 왔고 또 이런 가난에 어떻게 대처할지 잘 알고 있다. 고난의 상황에서 이러한 훈련된 대응책들은 튀어나온다. 비록 그것이 불쌍한 사람에 대한 온정과 나눔, 낯모르는 사람에 대한 구호, 봉사활동 등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인류가 고난에 대응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갖추었던 자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로또 등 복권에 당첨되어 어느 날 갑자기 거액을 손에 쥐게 된 사람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 같지 않다. 평생 만져보지 못했던 거금을 손에 넣고 70%는 다른 적절한 배우자를 찾아 이혼을 하거나, 엉뚱한데 돈을 투자하여 오히려 전보다 가난해 지거나 하는 등 돈을 관리하지 못하여 불행을 경험한다고 한다.

돈에 대한 관리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이 주어지면 겉치레를 하여 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방탕하여 탕진함으로써 벗을 잃는 등 오히려 돈이 없었던 시절보다 더 불행하게 된다. 자식농사를 망치거나, 너무 잦은 모임을 열어 사색과 고독의 시간을 방해받고 영혼이 피폐되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 본다. 이 경우 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불행에 빠지게 한다.

궁핍했던 시절 단백질 교환의 의미도 있었던 각종 관혼상제의 각종 행사와 명절이 이제는 ‘나누어 먹는’ 의미보다 정신적인 친교와 교감의 장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먹고 마신다. 먹지 않고 즐기는 방법이 우리에겐 없는 것 같다.

나는 우리가 재난과 고난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는데, 풍요로움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예전의 가난의 슬기(?)가 적용되고 있는 현장을 많이 본다. 이제 풍요의 문화를 새로 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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