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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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북 구미시의 211개 기관·단체로 구성된 '수도권 공장규제 완화 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구미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삭발하실 분 공개 모집합니다"라는 글을 올리자 20일 만에 486명이 삭발 신청을 했다고 한다. 눈물겨운 이야기다. 삭발은 소통을 위한 최후 수단 중의 하나다. 이 사건은 현재 한국 사회가 거의 소통 불능의 상태에 처해 있다는 걸 웅변해 준다. 특히 수도권-지방의 소통이 그렇다.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과 과오가 주된 이유일 것이나,그런 무능과 과오를 유발하게 된 환경에도 주목해 보는 게 좋겠다.

오래 전 어느 지방방송사 사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내 특강의 요지는 중앙의 모든 방송 관련 단체나 위원회에서 지방 몫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심지어 반론도 나왔다. 시청자위원회의 경우엔 지역별로 조직돼 있기 때문에 중앙 시청자위원회에 따로 지방 몫을 요구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었다. 당시 텔레비전 방송 시간대의 90% 가량이 중앙 제작 프로그램이었는데도 그 90%에 대해 지방사람들은 말할 자격이 없다는 그 놀라운 겸양(?)에 나는 두손 들고 말았다. 모든 영역에서 '지방 몫'을 강하게 주장하면 지방에서조차 성격이 모난 사람이거나 배 아픈 걸 못 견디는 사람 비슷하게 취급당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건 '평소 실력'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어서다. 지금 지방 사람들은 서울 중심의 소통 구조에 길들여져 있다. 중앙 언론은 서울 지방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전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 언론은 지방을 어떻게 다루는가? 중앙 텔레비전엔 '지방'이 없다. 지방은 오직 먹을거리,고기잡이,축제,미담,사고 등을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만 다뤄질 뿐이다. 삶이 없는 것이다. 왜 486명이 삭발 신청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텔레비전만 봐선 그걸 알 길이 없다. 신문도 다를 게 없다. 그 점에선 심지어 인터넷 매체마저 기성 언론의 길을 걷고 있다. 한마디로 소통 불능이다. 그러니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진주신문'의 편집국장으로 일하게 된 최보은씨는 지역언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지역문제가 전국 언론을 타는 경우는 정해져 있더라고요. 규모가 큰 사건이나 사고가 날 때,자연재해를 겪을 때,미담이나 훈훈한 인정을 보여주는 기사가 있을 때 외에는 없어요. '도시민들의 위로용'이랄까"라고 말했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바로 그게 현실이다. 지방이 서울 사람들의 위로용으로 존재하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겠지만,그로 인해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크다.

소통은 의식에서 비롯된다. 지방 사람들의 의식마저 서울 중심적으로 형성될 때에,소통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거나 마찬가지다.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로 전락할 뿐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에 들고 일어나는 정도의 의식은 남아있을망정,매번 사후 대응을 하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집단의식이 바뀌면 정책이 바뀐다. 서울 중심적 집단의식은 그대로 둔 채 개별 정책에 대해서만 싸우는 건 성공하기도 어렵지만 이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서울중심적 소통구조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 이 일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없기 때문에,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지방 엘리트들이 평소에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공영방송인 KBS의 두 채널 모두 서울중심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지방민의 처지와 지방 신문의 처지가 무엇이 그렇게 다르다고 지방신문 욕하는 지방민들이 그리도 많은가? 서울 지방지들이 전국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지방의 삶'을 제대로 다뤄달라고 요구하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지방 사람들이 체념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정도 문제다. 지금과 같은 서울중심적 소통구조는 지방을 넘어 국가적 재앙이다. 서울중심의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정책결정자들의 의식이 귀향을 하는 설과 추석 때뿐만 아니라 1년 365일 내내 서울이 아닌 전국을 생각할 수 있게끔 소통구조부터 개혁하려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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