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終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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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내내 세속적 질서와 삶에 짓눌러 살았던 옛사람들에게는 어쩌다 숨통을 열어주는 “난장판”이 필요했다.

그런 무질서는 새로운 질서를 예비하는 제례와 흡사해서 학자들은 그것을 “제의적 광란”이라고 부른다.

조선왕조말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설날을 하루 이틀 남겨놓은 때는 연중 중요한 계절 제의의 날 하나가 남아있었다.

이때는 지나가는 1년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날을 약속하는 “연종제(年終祭)”가 벌어졌다.

모두가 마음을 열고 가슴을 풀었다.

▲“포 쏘는 소리가 궁중대궐에 진동하고 사귀를 쫓고 통행금지를 풀어 놓으니 한 해가 다가는 것을 알겠도다. 밝고 휘황찬란하게 함부로 쏘아대는 불화살이 날아가니 홀연히 황혼을 깨고 벽공으로 올라간다”

현종 때 사람 유만공이 1843년에 지은 세시풍요의 한 구절을 보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연종제의 열기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궁중에서는 연종포와 화전을 쏘며 징과 북을 울리고 방생씨 가면을 쓴 광대들이 역질 귀신을 쫓는 난장판을 벌였다.

▲백성들의 민가에서도 생대(生竹)을 태워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지게 하는 “대불놀이”를 하면서 숨어있는 잡귀들이 놀라 도망치도록 했다.

이날 밤은 많은 벗들을 청해 잔치를 베풀며 밤을 지새웠다.

가난한 집에서는 이날 밤의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 미리 “세찬계”를 들었다는 기록이나 미련한 짓을 하면 “섣달그믐에 시루 얻으러 다니기”에 비유하는 속담은 오히려 설날보다 흥청거렸던 연종제의 분위기를 엿보게 한다.

집집마다 불을 훤히 켜놓아 마을마다 불야성을 이루었다.

▲한 마디가 끝나고 새 마디가 시작되는 “절일”인 “세”는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날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설날을 2주일 남겨놓은 요즈음은 몹시 가라앉은 분위기에 젖어있는 듯하다.

“설날 아침에 보는 것은 모두 명년일이고 금년의 일은 지금 보는 것들이 마지막 이별이다”라고 생각하면 밤을 새우며 지난 한해를 뒤돌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옛날 연종제때처럼 연종포를 쏘아 모든 악을 쫓아버리고 새날, 설날을 그렇게 맞고 싶은 심정이다.

설날과 입춘이 저만치 앞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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