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 실명제
진압 실명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호랑이의 중요성은 가죽에 있고, 사람의 중요성은 이름에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 애를 쓴다.

사람만이 아니다. 기업도 상품을 더 팔기 위해 고유의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에게 어필한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차별화하며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찰청이 새로운 시위문화 개선을 위해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았다.

▲시위 진압에 나서는 전.의경 기동대원의 진압복에 개인 명찰 달기. 이른바 '진압 실명제'다.

경찰청은 지난 15일 이르면 다음달부터 진압복에 개인 명찰을 착용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은 “검토 결과 명찰을 착용하면 책임감 있는 시위 진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명찰을 달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말을 뒤집어 보면 그동안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름표가 없는 진압복을 입고 ‘익명성’을 전제로 진압작전을 펴다보니 과잉진압을 낳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책임감 있는 시위 진압’이라는 말에는 언뜻 동의할 수 없다. 시위진압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그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지휘관의 몫이다. 부하들에게 명찰을 달게 해 책임에 대한 면피를 해 볼 요량은 아닌지. 벌써부터 "시위대도 이름표를 달게 하자"는 네티즌의 의견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시대 유명한 정승 황희가 어느 날 길을 가다 두 마리의 소에 쟁기를 메워 밭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물었다. “두마리 소 중에 어느 소가 밭을 잘 가나요?” 그러자 농부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귀에다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쪽 소가 낫습니다.” 다시 황희 정승이 왜 귓속말을 하냐고 하자, 농부는 “비록 짐승이라도 그 마음은 사람과 같습니다. 저쪽 소가 듣게 된다면 어찌 불평하는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말하기의 조심스러움을 전해주는 일화다.

최근 ‘전.의경 부모 모임’이 결성되는 등 평화시위를 호소하며 전.의경 부모들이 발벗고 나섰다. 폭력시위의 실상을 알리고 전.의경의 인권을 환기시키겠다는 이들은 보수단체의 집회 동참도 단호히 거절했다.

공권력의 최일선에 선 젊은이들에게 귓속말로 “고생한다”고 격려는 못할망정 “명찰을 달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밭 가는 소가 부럽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